[민병식 칼럼] 양귀자의 '불씨'에서 보는 위안과 희망의 불씨 살리기

민병식

양귀자(1955~ ) 작가는 전북 전주 출신으로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1978년 ‘문학사상’에 단편 ‘다시 시작하는 아침’, ‘이미 닫힌 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주로 일상적 현실 속에서 갈등하는 소시민들의 생활을 쓴 작품들로 유명하다. 특히, 경기도 부천에 사는 서민들의 애환을 그린 ‘원미동 사람들’은 1980년대 단편문학의 정수라는 평가도 받기도 했으며 무려 이백 만 부나 팔린 '천년의 사랑'의 저자이기도 하다.

 

'원미동 사람들'은 1980년대 지금의 경기 부천시 원미동 23통 5반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원미동 사람들' 두 번째 이야기로 부천 원미동에서 몇 년간을 살았던 양귀자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글인데 소설은 각각의 이야기지만 동시대에 원미동이라는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M식품회사를 다니던 진만 아빠는 원미동으로 이사를 온 후 부평공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은 지 몇 달 안 되어 해고를 당한다. 게다가 아내의 양품점 사업까지도 망해서 ‘전통문화 연구회’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회사에 취업했지만 실은 세일즈맨이다. 말주변이 부족한 그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말을 걸지도 못한다.

 

당신은 나가 돌아다니니 오히려 속을 편할 것이다. 전세를 빼서 국밥집을 해 보는 것은 어떠냐, 공단 앞에 허름한 식당은 월수 백이 넘는다더라. 은혜 아버지 회사는 보너스도 육백프로 준다더라. 은혜 엄마가 부럽다. 얼마라도 융통을 해 와야 전기세, 물세 내고 진만이 신발도 다 떨어졌다는 둥 아내의 하소연은 끝이 없다.

 

막힌 하수구를 뚫으면 더러운 물이 깨끗하게 흘러 내려가 버리듯 막힌 입을 뚫어야 한다. 실습 상대를 찾아서 연습 삼아서 딱 한 번만 후련하게 말을 쏟아내 보라는 회장이 한 말을 기억하지만, 실습 대상을 찾을 수 없다.

 

진만 아빠는 보름을 막힌 하수구처럼 보낸다. 어느 날 대합실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연습 대상을 물색 중 누가 옆자리에 앉아 주기만을 기다리면 진만 아빠에게 어떤 한 남자가 나타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한숨을 쉬며 담배를 꺼내 들더니 진만 아빠에게 라이터가 있냐고 묻는다. 그는 터미널 소속 짐꾼이었다. 진만 아빠는 이때를 노려 실습에 도전하고 짐꾼은 끝까지 진만 아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잠시 후 떠났던 짐꾼이 돌아오더니 자신이 ‘권 씨’ 문중의 종손이라며 제사가 빨리 돌아오니 촛대를 하나 사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권 씨’가 자신의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다. 여태까지 집 한 칸 장만 못했느니, 지금까지 안 해 본 것이 없느니, 고향마을에서는 ‘권 씨’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느니, 이렇게 그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 들어준다.

 

작품은 말하고 있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전부가 될 수 있으며 작은 도움이 어떤 이에게는 삶의 희망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희망이 생긴다고 말이다. 우리는 타인의 어려움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했는가. 모르는 사람은 고사하고 이웃, 동료 심지어는 가족에까지 마음은 타인이 아니었는가. 이 어려운 시대, 각박한 세상을 더 각박하게 만드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타인은 어찌 되든 자신만 잘 살면 된다는 우리들의 이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작품은 말하고 있다.

 

 

[민병식]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시인

현) 한국시산책문인협회 회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뉴스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2 전국 김삼의당 공모대전 시 부문 장원

2024 제2회 아주경제 보훈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이메일 :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5.09.24 10:37 수정 2025.09.2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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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