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무원종공신녹권』은 임진왜란 직후인 1605년에 만들어진 9,060인의 공신 명단이다. 이전 해인 1604년 조선 조정은 18명의 선무공신(宣武功臣)과 86명의 호성공신(扈聖功臣)을 선정하긴 했지만, 이들만으로는 공신에 대한 포상이 턱없이 부족하여 추가로 공신을 뽑은 것이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은 일종의 공신 증명 문서로서, 내용이 매우 많으므로 활자로 인쇄되어 책의 형태로 만들어져 배포되었다. 이 책은 많은 수의 공신에게 발급되었기 때문에 다수의 자료가 지금까지 현전한다. 『선무원종공신녹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러 역사 관련 사이트 등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은 이 책(보물 1001호 양산이씨 종가 고문서 『선무원종공신녹권』)의 내용을 이미지와 텍스트로 일반인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므로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이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의 구성을 살펴보면 차례대로 다음과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 책을 펴내는 의의와 이유를 설명한 머리말
- 공신의 관직(또는 품계)과 이름이 적힌 명단
- 공신에게 내려지는 특혜
- 책을 서술한 관리들의 명단
위 내용 가운데 공신 명단은 1등/2등/3등 세 단계로 나뉘어 있으며, 그 내용은 '관직(또는 품계) + 이름'이 죽 이어진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이해를 돕기 위해 공신 명단의 실제 사례를 나열한 것이다.
行水使裴興立 前水使安衛 行兵使李守一
(번역) 행 수사 배흥립, 전 수사 안위, 행 병사 이수일
위 명단에 나타난 배흥립, 안위, 이수일은 모두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난중일기』에서 배흥립은 흥양현감, 안위는 거제현령, 이수일은 경상좌수사로 등장한다(이수일은 『난중일기』에 관직만 언급되어 있다). 이들뿐만 아니라 『난중일기』에 나타난 많은 인물의 이름을 『선무원종공신녹권』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이 충무공 휘하에서 전공을 세운 인물들이니 공신으로 선정되어 이름이 『선무원종공신녹권』에 수록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무원종공신녹권』에는 문무 관리들의 이름만 실린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계층의 인물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이 책의 2등 공신 명단 가운데에는 '정 김탁, 영노 계생(正金卓 營奴戒生)'이라는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등장한다. 아마 '어디서 본 듯한 이름인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이들은 바로 명량해전 시기 충무공 이순신의 판옥선에서 싸우다 전사한 인물들이다. 다음은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언급된 『난중일기』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7년 9월 18일
내 배에 있던 순천감목관 김탁과 영노 계생이 탄환에 맞아 죽었다. 박영남, 봉학과 강진현감 이극신도 탄환에 맞았으나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원문] 吾船上 順天監牧官金卓及營奴戒生 逢丸致死. 朴永男奉鶴及康津縣監李克新 亦中丸 不至重傷.
위 기록에 언급된 감목관은 목장에 관한 일을 보던 종6품의 관직이다. 감목관 김탁이 『선무원종공신녹권』에는 '정 김탁'으로 기록되었는데, '정'은 정3품 관직이므로 김탁이 전사한 뒤 그의 관직이 증직된 것으로 짐작된다. 흥미로운 점은 전라좌수영의 노비(營奴)인 계생이라는 인물까지 『선무원종공신녹권』에 실린 점이다. 참고로 박영남, 봉학, 이극신도 모두 『선무원종공신녹권』에 이름이 실려있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은 사대부 양반뿐만 아니라 아전, 색리, 허통(許通), 서얼(庶孼), 면천(免賤), 승려(僧), 관노(官奴), 사노(私奴) 등 중인과 최하위 계층 인물들의 이름도 상당수 수록하였다. 임진왜란의 전공을 치하하려는 조정의 노력이 어느 정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다.
임진왜란 시기 큰 공을 세운 인물들에 대해서는 특별히 그 친인척에게도 특혜를 내려주었다. 『선무원종공신녹권』의 3등 공신 명단의 뒷부분을 들여다보면 충무공 이순신, 도원수 권율 등 전공이 높은 인물들의 친인척 이름이 다수 발견된다. 이점을 자세히 연구한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하여 대략이나마 아래에서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선무원종공신녹권』에 등장하는 충무공 친인척의 이름과 충무공과의 관계를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표에 나열된 인물들의 순서는 『선무원종공신녹권』에 기록된 순서를 따랐다.

위 명단을 살펴보면 충무공의 전공을 우대하여 그의 아들, 사위, 형제, 조카, 사촌 등에게 공신 특혜를 내려주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현직 관원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이 없는 경우 자신에게 내려지는 품계를 친족에게 주는 대가(代加)와 같은 제도가 있었다. 임진왜란 이전 이미 세상을 떠난 충무공의 두 형 이희신과 이요신 또한 공신 명단에 포함되었는데, 이 두 사람에게 내려진 특혜는 아들 등에게 이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 명단 가운데 학생 이침, 학생 이축, 전 사과 이준신은 충무공과 어떠한 관계인지 알기 어렵다. 충무공 가문의 족보인 『덕수이씨세보』를 살펴보아도 이 세 사람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명단에 나타난 이름의 순서로 보면, 이침과 이축은 충무공의 6촌 이경신의 아들인 듯하고 이준신은 6촌인 듯한데,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덕수이씨세보』에 따르면 6촌 이영신은 후사가 없다).
아마 충무공의 친인척에게 내려진 특혜에 대해 현대적인 관점으로 판단하여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기에 앞서 조선시대가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공동체 사회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조선 사회는 뛰어난 행적을 쌓으면 그 당사자와 함께 친인척, 스승, 친구 등이 모두 칭송을 받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당사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지탄받는 사회였다. 즉, 충무공처럼 커다란 전공을 세우면 친인척에게 특혜가 돌아가지만, 이와 반대로 반역과 같은 큰 죄를 지으면 삼대가 극형을 받을 수 있는 사회였다. 앞에서 언급한 대가 또한 이러한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제도이다.
『선무원종공신녹권』에 언급된 충무공의 친인척 명단은 조선 사회의 문화를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참고자료]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양산이씨 종가 고문서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
『덕수이씨세보(德水李氏世譜)』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