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시 교육 현장에서 마침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핀다. 특히 교과서 편집에서 마침표의 삽입이 어떤 방식으로 시의 호흡을 통제하고 감정을 정형화하는지를 문제 삼는다. 문법 중심 교육이 감응과 해석의 자유를 어떻게 억압하는지를 비판하며, 시 교육의 방향을 다시 묻는다.
문학 작품을 해석할 때, 문장 부호 하나는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시에서는 마침표 하나의 유무가 감정의 흐름을 이어지게도, 단절시키기도 한다. 김소월의 「접동새」와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 두 한국 근대시의 대표작을 통해, 초판본 원문과 교과서 수록본 사이에 존재하는 마침표 전략의 차이를 살펴보는 일은 단지 편집 방식의 차원을 넘는다. 그것은 시적 정서의 해석 방향을 재구성하는 중요한 행위이다.
정서가 흐르는가, 끊기는가: 「접동새」의 마침표 실험
김소월의 「접동새」 원문에는 마침표가 없다. 이 전략은 시의 슬픔과 비애를 끊김 없이 이어 간다. 독자로 하여금 흐름 속에서 정서를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한다. “누나는 /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처럼 결절 없이 밀려드는 시행은 마침표의 부재 덕분에 정서가 머무르지 않고 퍼져 나간다. 정서는 멈추지 않고, 여백 뒤에 진동과 여운은 길게 이어진다.
반면, 2024년 교육부 검정, 창비 발행 『고등학교 문학』(2025)에서는 2연부터 5연까지 마침표를 삽입해 정서적 흐름을 일정하게 조절하려는 편집적 전략이 나타난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시적 정서를 정리하게 한다. 일정한 감상 경로를 따라가도록 유도한다. 시의 흐름을 분절하고, 그만큼 상상과 여운의 공간도 줄어든다. 물론 이는 교육적 맥락에서 문법적 명확성을 우선시하는 편집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시가 제공하던 ‘정서의 여백’을 희생한다.
리듬의 감각, 해석의 여지: 「쉽게 씌어진 시」의 경우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는 초판본(정음사, 1948)에서 쉼표와 마침표를 혼용하며 리듬과 정서를 자연스럽게 흐르게 한다. 반면, 2024년 교육부 검정, 동아출판 발행 『고등학교 문학』(2025)에 실린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에는 초판본 원문과 달리 일부 쉼표를 생략하거나 마침표로 대체한다. 예컨대, 초판본의 “육첩방은 남의 나라, /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라는 시행은 쉼표로 인해 정서가 열려 있다. 반면, 교과서에서는 “육첩방은 남의 나라.”로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정서를 ‘종결’한다.
마침표는 쉼표보다 무겁다. 쉼표보다 더 긴 정서를 유도하며, 독자로 하여금 해석을 멈추고 머물게 한다. 통상 쉼표가 한 박자라면, 마침표는 세 박자 정도로 인식한다. 독자는 그만큼 오래 멈추고, 해석의 종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호흡의 차이는 시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줄이기도 한다.
교과서 편집은 시를 해석하는가, 제한하는가
교육적 텍스트로써 교과서는 시의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의 해석 가능성과 정서의 흐름을 편집적 방향에 따라 제한하기도 한다. 시는 본질적으로 열려 있는 텍스트이다. 독자의 상상과 정서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여백이 존재한다. 마침표는 이 여백을 줄이는 장치일 수 있다.
교과서가 모든 시에서 마침표를 삽입한 것은 아니다. 「접동새」의 1연 “접동 / 접동 / 아우래비 접동”에는 마침표가 없다. 이는 슬픔이 깃든 반복적 소리를 살려 청각적 심상을 강화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연들에서는 마침표를 삽입하여 원문이 지닌 흐름의 유연성은 상당 부분 사라진다.
시와 교육의 경계, 그 사이의 문학 편집
시의 편집은 해석을 강제할 수도, 해석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초판본이 가진 감정의 흐름과 열린 구조는 시가 문학으로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교과서 수록본은 교육의 틀 안에서 시를 다룬다. 이는 잘못된 선택은 아니다. 오히려 교육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과연 문학 교육이 학생들에게 ‘해석 가능한’ 시만을 보여 주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해석이 열려 있는’ 시의 다층성과 여백을 경험하게 해야 하는가? 시의 본질이 감정과 해석의 유동성에 있다면, 마침표 하나에도 그 본질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작은 점 하나의 무게
마침표는 점 하나에 불과하다. 시에서는 그 점 하나가 정서를 끊기도, 열어 주기도 한다. 김소월과 윤동주의 초판본은 감정의 흐름을 멈추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도를 고스란히 담았다. 반면, 교과서는 그 흐름을 잠시 멈춰 세운다. 그 멈춤은 교육의 언어로 번역한 문학이다.
이 작은 점 하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것이 바로 시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3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