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의 명절, 중추가절(仲秋佳節) 한가위 날이 다가온다. 봄날의 화사한 꽃들의 결실이 들판과 산야를 풍성하게 하는 지절(支節)이다. 이런 절기에 어울리는 우리의 노래, 대중가요 아랑가는 최정자의 <다홍치마>다.
이 아랑가(ArangGA) 노래는, 1969 신세기레코드 가-12243 음반, 1면에 유주용의 <부모>, <님과 벗>에 이은 3번트랙에 실린 노래다. 2면에 <결혼 지각생>, <꽃 순정> 등이 같이 실렸다.
노래 속의 주인공 아가씨는, '언니의 다홍치마를 몰래 입고 뒷동산 솔밭으로 갔다가 치맛자락'이 솔가지에 걸려서 찢어졌다. 그 솔밭은, 이미 깊은 정을 나누고 있는 님과 약속한 장소다. 이들의 만남은 한두 번이 아니다. 가시밭에 반들거리는 사랑놀이의 흔적이 눈에 선하고, 노랫말에 얽혔다.
<다홍치마> 가사
정든 님 기다리는 뒷동산 잔솔밭에
언니 몰래 다홍치마 꺼내 입고 갔다가
솔가지에 걸려서 다홍치마 찢었네
나는 몰라 나는 몰라 어쩌면 좋아
밀밭 뽕밭 다 두고 흥흥~ 흥~
십오야 밝은 달이 휘영청 높이 솟고
잔솔밭에 산들바람 간지러운 이 밤에
님의 품도 좋다만 찢어진 다홍치마
나는 몰라 나는 몰라 어쩌면 좋아
밀밭 뽕밭 다 두고 흥흥~ 흥~
1960년대~ 자유연애 물결이 출렁거렸지만, 우리나라 사회통념의 눈길은 봉건 의식이 잠재해 있었다. 그래서 싱그러운 청춘들 사랑의 발길은 늘, 어스름 달빛이 길을 안내하는, 보리밭이거나 밀밭, 뽕나무밭으로 향했다.
날이 밝으면, 그 숲 아래가 이리저리 뒤척거려진 채로 아침을 맞이한 곳들이 흔했다. 지난밤 사랑의 불길이 지나간 흔적이었다. 누가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의 불덩어리를 식힐 수가 있으랴. 그들은 스스로 불씨이면서 불덩어리였고, 타오르다가 식어버리는 불길이기도 했다.
<다홍치마> 속의 꽃 처녀, 님의 품은 좋았지만~ 찢어진 언니의 다홍치마를 어쩌랴. 아마 언니도 은근슬쩍 모른 채, 동생을 향하여 한쪽 눈을 찡긋했으리라.
다홍치마(多紅~)는, 짙고 산뜻한 붉은빛 치마,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노랑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었고, '결혼한 젊은 여자는 연두색 회장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는 것이 전통적인 풍습'이었다. 치마의 단과 윗부분은, 희고 아래의 절반은 붉은 물감을 입힌 치마다.
여기서 '동가홍상(同價紅裳)'이라는 말도 나왔다. '같은 값이면 붉은 치마'라는 뜻으로, '이왕이면 더 좋은 쪽을 택한다'는 말이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같은 값이면 과붓집 머슴살이'와 같은 뜻이다. 여러 개의 물건값이 모두 같다면, 가장 좋은 쪽을 선택한다는 말.
'녹의홍상(綠衣紅裳)'과도 관련이 있다. '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라는 뜻으로, 젊은 여인의 고운 옷차림을 비유한 말이다. 다홍치마는, 조복(朝服)의 아래옷으로, 붉은 바탕에 검은 선을 두른 옷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붉은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처녀를 비유한다.
즉 같은 값이면, '청상과부(靑孀寡婦) 또는 청상기생(靑裳妓生)보다는, 처녀를 고른다'는 뜻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과도 비유되고, 같은 값이면 검정소를 잡아먹는다'는 말과도 의미상으로 연결된다.
'욕제세군 수급홍군(欲制細君 須及紅裙)'이란 말도 있었다. 봉건시대의 관념이다. '시집온 아내의 버릇을 바로잡으려면, 다홍치마를 입은 새색시 때부터 해야 한다'는 속담이다.
우리나라에, 연애 · 자유연애 · 신여성운동 이런 말을 회자시킨 사람 중에 윤심덕(사의 찬미 가수), 나혜석(사양화가), 김원주(수덕사의 여승)을 간과할 수 없다. 1920년대 신여성들이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절, 1910~1945년까지의 세월 중에, 조선총독부는 ‘영특하고 탁월한 인재’들을 선발하여, 조선총독부 장학생으로 일본 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학습과 학연 적인 친일화의 방도로 삼았던 것이다. 이들은 신여성운동을 하면서, 자신들의 삶에는 생채기를 낸 선행자들이었다.
1920~1930년대에 등장한 풍기(風紀) 문제는, 남녀 청춘들의 이성 교제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봉건 관념과 근대문명의 충돌 현상이었다. 자유연애 풍조는, 개인 스스로가 배필이나 연인을 자유롭게 선택하자는, 그 당시로서는 생경스러운 트렌드였다.
1924년 <신여성> 5월호에~ ‘미혼 남녀들의 바라는 남편, 바라는 아내’라는 설문 조사 결과에 의하면, ‘이상형은 취미와 이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정신적 동반자에 가깝다는 것’이었단다.
1930년대 여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는, 1932년 <삼천리> 3월호에 실린 ‘학창을 떠나려는 여학생의 결혼 조건’을 보면, 과반의 여학생들이 대학이나 전문학교 출신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선호하는 배우자의 직업도, 회사원 · 기자 · 사회운동가 · 문인의 순이었다.
이 시기, 1923년 ‘평양기생 강명화와 칠곡 출신 선량 장병천의 비련사(悲戀死)’는 1967년 이미자의 노래, <강명화>로 환생했었다. 둘은 한양과 일본을 오가면서~ 연정을 나누고 장래를 언약했지만, 온양온천 여관방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강명화와 장병천이 한 달 여의 시차를 두고, 같은 장소에서 이승을 등진 것이다.
1926년, 윤심덕의 <사의 찬미> 스토리가 신여성운동 시절 비련사의 뒤를 잇는다. ‘미혼 신여성 윤심덕과 유부남 김우진의 현해탄 투실 익살(匿殺) 사건.’ 일본 유학 중 만난 두 주인공. 1926년 8월 3일 저녁 11시, 일본 시모노세끼(下關) 항을 출발하여, 부산항을 향하는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을 타고 오던 중, 4일 01시경 동반 투신을 하여 영원의 나라로 갔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이러한 세월의 터널을 지나, 우리 누이들이 <다홍치마>를 벗어 던지고, 원피스 · 투피스의 의상으로 갈아입은 시기는, 1970년대를 넘어선 시기다. 유행의 물결은, 늘 경제적 생활지수를 앞질러 간다. 행복지수와도 연계된다.
유행(流行)과 사조(思潮)와 경향(傾向)을 선도하는 지표는 행복지수(幸福指數)이다. 2023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행복도 1위는 핀란드로, 6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10위권 내에는 북유럽 국가들이 많았다. 대한민국은 57위였다. 2025년 AI 보고서에 의하면, 58위~ 1단계 하락했다.
다음은~ 덴마크, 아이슬란드, 이스라엘,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룩셈부르크, 뉴질랜드가 2∼10위를 차지했다. 이어 11∼20위에는 오스트리아, 호주, 캐나다, 아일랜드, 미국, 독일, 벨기에, 체코, 영국, 리투아니아가 포함됐다. 프랑스는 21위였다. 연애와 사랑도 유행을 탄다. 행복지수의 상수(常手)와 변수(變手)이기도 하다.
다홍치마는, 우리의 전통 여성 의상 중의 대표 격이다. 이러한 의상을 모티브로 얽은 노래, <다홍치마> 같은 노래를 ‘아랑가(ArangGA)’로 통칭해야 한다. 필자의 주창이기도 하다.
필자는, ‘트로트’라는 말을 ‘아랑가(ArangGA)’로 통칭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문화체육관광부로의 국민 제언, 특허청에 ‘상표특허출원’을 하여서, ‘제41류 상표특허’를 취득하였다. 특허상표 ‘아랑가(ArangGA)’.
이 ‘아랑가(ArangGA)’ 상표특허에는, ‘트로트 가수 육성, 트로트 가요 공연 기획 연출 및 경연대회, 트로트 문화센터 운영, 트로트 학원 운영....’ 등, 열 한가지 콘텐츠를 망라하고 있다.
아랑가는 ‘아리랑’에서 ‘아랑’을, ‘가요’에서 ‘가’를 차운하여, 융합한 순수 우리말이다. <다홍치마> 같은 노래가 ‘트로트’가 아닌, ‘아랑가’로 통칭될 날을 앙망한다.
그날이, 대한민국 대중가요 유행가 아랑가 131년사에서 대중문화예술의 ‘코스미안꽃이 피는 날이’다. 코스미안 ‘마음이 지향하는 대로 삶을 살아내는...’ 그들의 일상이 바로, 코스미안 우주이다.
한국 아랑가 131년은, 1894년 ‘동학농민의거’를 응원했던 민중노래 ‘새야새야 파랑새야’로부터, 2025년 코스미안뉴스의 <다홍치마> 아랑가 스토리텔링까지의 세월이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