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흙과 대화를 시작한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삶의 진짜 주인이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린다. “직장 그만두고 시골 내려가 농사짓고 싶다.” 하지만 그 로망을 끝내 현실로 만든 이가 있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 죽본리 500-1번지, 그곳에는 지난 26년간 흙과 함께 웃고 울며 살아온 한 남자의 농장이 있다. 그의 이름은 박현대, 그는 스스로를 “작물과 대화하며 휴식과 만족을 재배하는 농부”라고 소개한다.
그가 심은 것은 단순히 배와 사과대추, 헤이즐넛, 차요테 같은 농산물이 아니다. 그가 기른 것은 농업에서의 행복, 삶의 균형, 그리고 한국 농업의 미래 가능성이었다.
직장인의 로망, 그러나 쉽지 않았던 시작
1999년, 박현대 대표는 도시 직장인의 흔한 꿈을 실현했다. 남들처럼 안정된 직장을 다니던 그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평생 사무실에 앉아 숫자만 세다 끝나고 싶지 않다.” 그는 가족과 상의 끝에, 과감히 도시를 떠나 논산 땅에 농장을 마련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농사? 그거 힘만 들고 돈은 안 된다는데, 왜 하려고 해?” 하지만 박현대 씨는 달랐다. 그는 돈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만족과 휴식, 그리고 작물을 기르며 느끼는 작은 행복이라고 믿었다.
작물과의 대화가 주는 행복
박현대 대표는 흔히 말하는 “농사꾼”과 다르다. 그는 농업을 하나의 ‘소통의 예술’로 본다. 매일 아침 밭을 돌며 나무와 작물들에게 말을 건넨다. “오늘은 좀 힘들지 않니?”, “비가 조금만 더 와줬으면 좋겠지?”
그는 농업을 통해 삶의 본질을 배웠다고 말한다. “도시는 늘 바쁘고, 성과를 강요하죠. 하지만 농장은 달라요. 자연은 천천히 움직이고, 작물은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아요. 기다림 속에서 저는 오히려 더 큰 성취감을 얻습니다.” 이런 그의 태도는 농장의 정체성 키워드인 ‘휴식과 만족’으로 집약된다. 그의 농장은 단순한 생산지가 아니라, 쉼터이자 실험실, 그리고 작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여러 작물을 시험하다
그의 농장은 일종의 “실험실”이다. 그는 남들처럼 단일 작물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대신 배, 사과대추, 헤이즐넛, 차요테 등 다양한 작물을 심고 길렀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농업은 끊임없는 도전이자 적응이니까요.”
여러 작물을 시험하며 그는 흙의 성격을 알게 되었고, 기후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는 길을 찾고 있다. 특히 최근 기후 위기는 그의 농업 인생에 큰 도전이었다. 예상치 못한 가뭄, 갑작스런 폭우, 변화하는 병충해 패턴…. 그는 말한다.
“농부에게 기후변화는 단순한 뉴스가 아닙니다. 매일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예요.”
기후변화와의 싸움
박현대 대표는 지난 26년 동안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어느 해에는 배 수확량이 반 토막 나기도 했고, 사과대추 밭이 병해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정말 농장을 접어야 하나 고민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작물들이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저도 힘을 내야겠더라고요. 농업은 결국 자연과 함께 가는 길이니까요.”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다. 기후변화에 맞서는 방법을 연구했고, 더 강한 품종을 시험했으며, 새로운 작물을 도입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눈에 띄게 된 것이 바로 헤이즐넛, 즉 개암이었다.
한국형 개량 개암의 가능성
개암은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4대 견과류 중 하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대중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개암은 터키, 이탈리아에서 수입된다. 박현대 씨는 여기에 기회를 보았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국산 개암을 보기가 힘들까요? 저는 한국 기후와 토양에 맞는 개량형 개암을 키워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가능성을 봤습니다.”
그의 농장은 지금, 한국형 개량 개암의 시험장이자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나무를 심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형 재배 기술과 지역에 맞는 품종 적응을 연구하고 있다. “언젠가는 한국산 개암이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출발점이 되고 싶어요.”
농장은 또 하나의 삶
그의 농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그는 농장을 삶의 철학이 구현된 공간으로 여긴다. 배나무와 사과대추나무 사이를 걸을 때면, 그는 도시에서 잃었던 여유를 되찾는다. “저는 농장에서 쉼을 얻습니다. 그리고 제 농산물을 맛본 사람들이 행복해할 때, 저는 더 큰 만족을 얻습니다. 그래서 제 농장은 단순히 먹거리를 생산하는 곳이 아니라, ‘휴식과 만족’을 재배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박현대 씨는 자신만의 농사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늘 말한다. “제가 원하는 건 단순히 제 농장만 잘되는 게 아닙니다. 한국 농업 전체가 변화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작물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형 개량 개암은 그 변화의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개암을 중심으로 한 연구와 실험을 이어갈 계획이다. 농업의 길은 쉽지 않지만, 그는 확신한다. “흙은 배신하지 않는다.”
휴식과 만족을 재배하는 남자
논산의 작은 마을, 죽본리 500-1에 있는 박현대 농장. 그곳에서 그는 오늘도 작물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의 삶은 단순한 농부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인의 로망을 현실로 만든 용기, 기후변화와 맞서 싸우는 도전, 그리고 한국 농업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비전이다. 그는 농부이자 철학자이며, 실험가이자 개척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삶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이야기꾼이다.
“저는 농사를 지으면서 깨달았습니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더군요. 하루의 땀방울,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그리고 내 곁에 있는 흙.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