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마침표를 둘러싼 편집 권력의 작동 방식을 윤동주의 시를 통해 고찰한다. 마침표 하나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기호를 둘러싼 해석의 통제와 ‘기호 권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 글은 윤동주의 시를 둘러싼 편집의 역사에서, 문학이 어떻게 권력과 조우하거나 저항하는지를 추적한다.
우리는 보통 마침표를 문법의 끝, 문장의 완결로 배운다. 문학, 특히 시에서 마침표는 단순한 문장 부호 그 이상이다. 그것은 감정을 닫거나 열고, 세계를 구획하거나 흐르게 만드는 정서의 장치이다. 특히 시라는 갈래는 언어의 규칙보다 정서의 여백, 의미의 여운을 더 중시한다. 이 글은 창작 사조와 비평 방법론을 통해 시 속 마침표의 전략적 사용을 분석하고자 한다. 마침표 하나가 어떻게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시의 정서를 조형하는지 살펴본다.
마침표, 기호의 권력인가 감정의 리듬인가
마침표는 기호학적으로 ‘완결’의 기호로 기능한다. 시에서는 이것이 단지 문장을 끝내는 기호가 아니다. 감정을 중단시키거나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마침표의 유무는 해석의 여백, 혹은 미완의 정서 상태를 만들어 낸다. 그것은 시의 ‘정서적 리듬’을 좌우하는 핵심 장치이다. 창작 사조와 비평 방법론은 이러한 마침표를 각기 다른 전략으로 활용한다. 즉, 마침표 하나에 각 사조의 미학과 정서 윤리가 응축해 있다.
사조별 마침표 전략: 닫힘과 열림의 미학
고전주의와 계몽주의는 이성, 질서, 논리를 중시한다. 마침표는 이들 사조에서 ‘규범’과 ‘형식의 완결’을 상징한다. 시의 내용을 명확히 구획한다. 감정은 통제한다. 마침표는 글의 논리를 봉합하는 ‘이성적 종결’이다.
낭만주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은 이와 반대이다. 이들은 감정의 흐름, 상상력의 자유, 규범의 해체를 추구한다. 마침표를 생략하거나 파괴함으로써 정서의 여운과 해석의 자유를 확보한다. 감정은 흘러넘치며, 해석은 끝없이 확장한다. 마침표는 정서를 끊는 ‘억압의 기호’로 작용하기도 한다.
현대주의는 마침표를 형식의 안정성과 정서의 조형 수단으로 활용한다. 파편화된 현실과 정서의 분열을 제어하는 리듬 장치이다. 반면, 후기 현대주의는 마침표 자체를 ‘기호 권력’으로 간주하며, 삽입과 생략 모두를 전략화한다. 해석의 무한성과 중심의 해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마침표는 의미를 고정하는 ‘권위적 기호’로서, 해체주의는 이를 해체하고자 한다.
마침표를 둘러싼 비평의 시선들
비평 방법론에서도 마침표는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신비평주의는 마침표를 시의 ‘유기적 통일성’을 위한 도구로 본다. 구조와 정서의 조화를 위해, 필요에 따라 삽입하거나 생략한다. 형식주의와 구조주의는 마침표를 ‘구조적 경계’로 본다. 문장의 끝이 아니라, 의미 단위의 명확한 구획으로 기능한다.
해체주의나 탈구조주의는 전혀 다른 입장이다. 마침표는 의미를 고정하는 ‘권력의 흔적’이며, 해체의 대상이다.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 개념에 따르면, 마침표는 해석을 지연시키고, 의미를 유예시키는 기호이다. 해체주의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마침표의 부재가 더 큰 의미를 생성한다.
한국 현대시 속 마침표: 삽입과 생략의 윤리
한국 현대시에서도 마침표는 전략적으로 사용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마침표를 삽입하면 이별의 단호함을 강조하지만, 원문에는 생략 상태이다. 이는 정서의 흐름을 독자에게 위임하는 시적 장치이다. 이육사의 「교목」 역시 원문에는 마침표가 없지만, 천재교과서에서 발행한 2024년 교육부 검정, 『고등학교 문학』(2025)교과서에서는 마침표를 삽입해 의미를 고정했다. 마침표 하나가 감정의 흐름을 닫아 버리는 셈이다. 이는 해석 통제의 교육적 전략이자, 계몽주의적 유산의 잔영이다.
정리: 시의 숨결, 마침표 하나로 바뀐다
마침표는 단지 글의 끝이 아니다. 그것은 정서의 종결이기도, 시작이기도 하다. 창작 사조에 따라 마침표는 닫힘의 권력일 수도, 열림의 가능성일 수도 있다. 고전주의와 현대주의는 그것을 질서와 완결의 기호로 삼고, 낭만주의와 초현실주의는 생략을 통해 감정의 해방을 추구한다. 후기 현대주의는 그것을 기호 권력으로 보고, 해체한다.
마침표 하나에 담긴 이 미묘한 차이는 시의 정서 흐름, 독자의 해석 태도, 텍스트의 존재론적 성격까지 좌우한다. 결국, 시에서 마침표란 ‘문장의 끝’이 아니라 ‘정서와 해석의 분기점’이다. 시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는, 마침표가 찍힌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3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