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컬럼] 블루아워(Blue Hour)

홍영수

블루아워(Blue Hour)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말은 빛과 어둠이 함께 섞여서 사물이나 사람의 구분이 어려운 시간대를 말한다. 해 뜰 녘이나 해 질 녘의 애매모호하면서 길지 않은 시간이다. 우리는 가끔 이른 아침이나 서산마루에 해가 질 무렵 푸르스름한 빛을 볼 때가 있다. 그 빛은 왠지 모르게 신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그래서 블루아워를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낮이 지나고 밤이 오는, 밤이 지나고 낮이 오는 경계의 시간, 한마디로 황혼을 묘사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해가 질 무렵 어스름한 때에 저 너머로 다가오는 형체가 내가 키우던 개인지, 사냥할 때 만나는 늑대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웠던 프랑스 양치기들의 경험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어스름한 황혼의 저녁 시간 블루아워,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애매하고 미묘한 시간, 불분명한 경계의 시간이고 이편과 저편의 시간이기도 하다. 해방의 시간이기도 하고 자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인간은 시각적인 것에 적응하면서 사물과 풍경의 변화를 경험하고 시각의 불완전하고 모호함의 경계에서 다양한 감정을 깨닫는다. 이 같은 인지변화는 일상적인 풍경을 새로운 인상으로 느끼게 하기도 한다. 괴테는 인간의 신체가 색을 내재하고 있으며 개인의 경험을 통해 외부의 색이 인식되기 때문에, 색은 감성적이고 인간의 정신적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어느 해, 도자기 전시회를 갔던 기억이 있다. 그 전시회에 출품된 몇 작품이 블루아워 시간대의 보랏빛과 하늘, 해 질 녘에 나타난 다양한 빛들이 푸른 하늘빛과 함께 내려앉은 어둠의 순간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작가는 이미 블루아워의 빛들을 참고해서 유약을 입혔을 것이다. 이처럼 어둠과 빛이 서로 교차하면서 혼합되는 접점을 신비의 시간 속에서 예술가들은 영감을 얻는다.

 

황혼과 밤의 시작 사이, 대충 1시간 동안의 희미한 석양의 빛과 동시에 맞이한 어둠 속에서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느낀다. 사진작가 빌 레인은 “블루아워를 이성과 무의식이 만나는 지점”이라 묘사했다. 그는 이성을 상징하는 낮과 본능에 가까운 무의식의 상태로 밤을 비유하기도 했다.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은 블루아워와 관련이 있을까? 사실 이 말은 황혼이라는 짧은 시간이라는 의미를 중심으로 다양하게 언급되기도 한다. 해뜨기 직전의 빛과 어둠, 해지기 전의 어둠과 빛의 짧은 오묘한 시간, 고요 속 세상의 아름다움의 순간은 황혼기에 접어든 노년의 시간대와는 비슷한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실제로 노인의 삶이 결코 아름답고 평온하지만은 않다는 것에서 차라리 삶의 덧없음과 대비되기만 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노년의 삶 속에 건강과 복지 등의 실질적인 생활에서 블루아워와 결합해 마지막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는 시선을 강조하기도 한다.

 

작년, 이때쯤 시골의 대문 밖에서 저 멀리 실루엣처럼 보이는 진도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황혼의 빛을 끌어당겨 휘두르고 있는 듯한, 어스름한 빛과 어둠의 섬 자락을 바라보는 시선의 일직선상에 동네 노인정에서 퇴근? 하는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지팡이를 짚은 굽은 등과 흰 머리카락 등등이 노을빛에 젖은 진도 섬이라는 화폭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 순간이 바로 블루아워,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순간 할머니의 모습에서 블루아워의 시간대를 떠올렸다. 하루의 시작과 끝, 인생의 시작과 황혼의 시간에서 할머니의 굽은 등에 얹혀있는 것은 한때의 밝았던 젊음과 짙어 가는 지금의 어둠을 볼 수 있었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잠시의 시간, 할머니의 생 또한 그렇게 어스름하고 모호한 가운데 깊고 고요한 사색의 시간일 것이다. 그렇다면 할머니의 어둠을 향해 사라지는 순간, 과연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결코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더 깊은 존재의 본질로의 회귀는 아닐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5.10.20 07:56 수정 2025.10.20 09:2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