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호 칼럼] K-콘텐츠와 그리스로마 신화

제7회 코스미안상 은상

[당선소감]

 

삶의 고비마다 글은 저에게 하나의 등불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번 코스미안뉴스 인문 칼럼 공모전에서 두 편의 수필로 은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단지 글을 쓴 결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급변하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의 본질과 삶의 방향을 다시 묻고자 했던 저의 오랜 사유가 작은 결실을 맺은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암 투병의 시간을 지나며 나는 ‘시간’과 ‘의미’의 무게를 새삼 느꼈고, 그 속에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번 수필 「K-콘텐츠와 그리스로마 신화」와 「자국 경제 우선주의와 중세적 회귀」는 모두 현대의 현상을 고전적 시선으로 성찰하고자 한 시도였습니다. K-콘텐츠의 세계적 확산을 단순한 문화 트렌드로 보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욕망과 신화적 상상력의 연장선에서 해석해 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세계 각국이 다시금 성벽을 쌓는 듯한 자국 중심의 경제 질서 속에서, 중세의 교훈을 되새기며 우리가 어떤 다리를 놓아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고전은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를 비추는 거울임을 두 글을 통해 전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글이 단순히 사유의 기록을 넘어, 사회적 대화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로벌 미디어로서 코스미안뉴스가 인문적 성찰을 전 세계 독자와 공유하고, 한국적 시선이 보편적 가치를 모색하는 데 중심이 되기를 진심으로 또란 바랍니다. 저 역시 그 여정에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수상이 끝이 아니라, 더 깊은 사유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칼럼] K-콘텐츠와 그리스로마 신화

 

오늘날 세계 문화의 지형도를 바꾸는 거대한 흐름 중 하나는 ‘K-콘텐츠’다. K-팝과 K-드라마는 물론이고, K-푸드, K-웹툰, K-게임까지 한국 문화는 전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깊이 스며들고 있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 이제는 하나의 ‘신화적 이야기틀’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문화 연구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에서 모든 신화와 서사에는 공통된 구조, 즉 ‘영웅의 여정’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흥미롭게도 K-콘텐츠의 성공 서사 역시 이러한 신화적 틀과 맞닿아 있다. 특히 그리스로마 신화의 상징들은 K-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공감과 몰입을 얻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예컨대 K-팝 그룹의 세계관은 신화적이다. 방탄소년단(BTS)의 ‘Love Yourself’ 시리즈는 나르키소스(Narcissus)의 자기 성찰과도 연결되고, ‘Map of the Soul’은 융의 심리학과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차용한다. 에스파(aespa)의 세계관은 그리스 신화의 ‘이중세계’ 모티프를 현대 디지털 시공간으로 변주한 사례라 할 수 있다. K-팝 팬덤은 영웅 신화의 집단적 의례처럼, 공연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동체적 경험을 재현한다.

 

K-드라마 또한 신화적 구조를 따른다. 드라마 <도깨비>는 불사의 저주와 인간적 사랑의 서사를 교차시키며, 이는 프로메테우스적 운명과도 닮아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예상치 못한 영웅’이라는 신화적 원형을 구현한다. 신체적 혹은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탁월한 능력으로 공동체를 구원하는 이야기는 헤라클레스나 페르세우스의 모험 구조를 연상시킨다.

 

음식 문화 역시 신화적 힘을 지닌다.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가 포도주로 공동체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듯, 한국의 밥상 문화는 ‘나눔’과 ‘연대’를 상징한다. 김치, 불고기, 비빔밥이 세계인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문화적 코드로 소비되는 이유는, 그 안에 공동체적 정체성과 집단적 체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웹툰과 게임은 신화를 직접적으로 변주한다. 웹툰 <신과 함께>는 저승 세계와 윤회의 개념을 현대적 서사로 재탄생시켰고, <나 혼자만 레벨업>은 영웅의 성장을 신화적 전사의 모험 구조로 그려냈다. 게임 <리니지>는 기사와 마법사의 대결 구도를 통해, 제우스와 티탄,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대립 구조를 현대적으로 계승한다. 이처럼 K-콘텐츠는 신화를 단순히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욕망과 맞물려 새로운 이야기로 재창조한다.

 

흥미로운 점은 K-콘텐츠가 단순히 한국적 정체성만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신화 구조를 한국적 서사로 변주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인간적 욕망과 갈등을 통해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냈듯, K-콘텐츠 역시 개인의 상처와 사회적 모순, 공동체적 연대를 보편 언어로 풀어낸다.

 

앞으로의 발전 방향은 바로 이 ‘신화적 상상력의 확장’에 달려 있다. 단순히 대중적 재미에 머물지 않고, 환경 위기,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성,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같은 글로벌 의제를 신화적 장치와 결합한다면, K-콘텐츠는 단순한 문화 상품을 넘어 인류 보편의 이야기를 전하는 ‘현대의 신화’가 될 수 있다. 예컨대 AI와 인간의 갈등을 다루는 콘텐츠는 판도라의 상자나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으며, 기후 위기를 다루는 콘텐츠는 대홍수 신화와 결합하여 전 세계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또한 K-콘텐츠는 팬덤과 플랫폼을 통한 ‘참여적 신화’라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스 신화가 수많은 시인과 극작가, 화가들에 의해 재해석되며 끊임없이 새로워졌듯, K-콘텐츠는 팬들의 2차 창작과 밈(meme) 문화, 소셜미디어 활동 속에서 재탄생한다. 이는 과거 신화가 공동체적 의례 속에서 살아 움직였던 방식과 유사하다. K-콘텐츠의 세계관은 제작자가 설계하지만,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팬과 소비자의 집단적 참여다.

 

결국 K-콘텐츠의 성공은 한국이라는 특정한 땅에서 출발했지만, 그 뿌리는 인간 보편의 신화적 상상력에 닿아 있다. 신화가 고대인들의 삶을 해석하는 거울이 되었듯, K-콘텐츠는 21세기 인류가 자신을 이해하는 거울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이고, 지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 이중적 성격이야말로 K-콘텐츠의 미래를 떠받칠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작성 2025.10.22 07:18 수정 2025.10.22 07:54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한별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