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시에서 마침표란 6

독해 리듬론: 마침표 없는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 글은 마침표 없는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묻는다. 문장의 끝이 열려 있을 때, 독자는 문법이 아닌 호흡과 정서의 리듬에 따라 시를 감응한다. 마침표를 제거할 때 독자의 감각과 정서가 어떻게 활성화하는지를 분석하며, 시적 낭독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1. 현대 시 창작 사조에서 마침표 전략

 

마침표, 종결인가 생성인가?

 

현대시는 언어에 대한 실험과 문학 형식에 대한 반성 속에서 끊임없이 경계를 넘나드는 텍스트의 시대이다. 이런 문학적 지형 속에서 마침표는 단순히 문장을 끝맺는 기호를 넘어, 시적 사유의 방향을 결정짓는 전략적 장치로 부상한다. 마침표의 유무, 배치, 반복은 시인의 미학적 의도와 창작 사조의 흐름 속에서 매우 섬세한 층위를 형성한다.

 

모더니즘 시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인간 소외, 정체성 혼란, 현실 감각의 단절 등을 형상화하기 위해 문법적 절제와 형식적 통제를 중시했다. 이 시기 마침표는 ‘정지’의 징표로 기능한다. 정서나 사유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차단하고, 단편화된 인식의 구조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한다. 예컨대, 엘리엇이나 파운드의 시에서는 마침표가 고립되고 파편화된 인간 경험을 상징적으로 종결짓는 형식적 장치로 활용한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특히 1980년대 이후의 실험시 경향에서는 이러한 형식적 통제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다. 이들은 마침표를 해체하거나 과잉 사용함으로써 ‘종결’이라는 개념을 전복시킨다. 텍스트 내에서 마침표는 단절의 기호이기보다는, 새로운 의미망을 생성하는 인터페이스로 기능한다. 여기서 마침표는 문장을 닫기보다는, 다른 문장을 예비하거나, 의미의 확장을 잠정적으로 유예시키는 ‘열린 기호’로 전환한다.

 

특히 후기 실험시나 디지털 시 등에서는 마침표의 시각적, 청각적 효과까지도 텍스트의 일부로 간주한다. 마침표를 생략함으로써 시의 리듬은 연속성을 얻고, 독자는 텍스트의 종결점을 스스로 탐색해야 한다. 반대로 마침표의 과잉 사용은 의도적인 파열을 유도하며, 낯선 언어 경험을 독자에게 부과함으로써 감각의 전복을 꾀한다.

 

결국, 현대 시의 창작 사조에서 마침표는 텍스트의 종결을 알리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언어 실험과 미학적 전략이 응축된 하나의 ‘시적 도구’로 기능한다. 그것은 닫힘과 열림, 종결과 생성, 고정과 유동성이라는 이중적 의미 공간을 가로지르며, 독자와 시인 사이에 새로운 언어적 긴장감을 창출하는 매개체이다.

 

2. 비평 방법론 관점에서 본 마침표의 시적 의미

 

비평 방법론은 문학 텍스트의 해석 방식에 따라 마침표라는 기호에 각기 다른 층위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들 방법론은 단순히 마침표를 문법적 종결 기호로 보지 않는다. 그것이 지닌 형식적 위치와 기능, 독자와의 관계에 주목하여 보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구조주의 비평은 텍스트를 자율적인 구조로 보고, 그 안의 기호 간 관계에 주목한다. 이 관점에서 마침표는 문장 구조를 분할하고, 의미 단위를 정리하는 ‘경계 기호’로 간주한다. 마침표는 텍스트의 질서를 부여하고, 해석이 가능한 장치로 시를 조립하게 해 주는 규칙적 기제이다. 특히 롤랑 바르트와 같은 비평가는 문장 종결이 의미 완결로 이어지는 과정에 주목하며, 마침표를 ‘의미의 봉합점’으로 본다.

 

그러나 해체주의 비평, 특히 데리다의 이론은 마침표의 이러한 ‘종결성’ 자체를 전면적으로 의심한다. 해체주의는 모든 기호가 ‘차연(différance)’의 과정 속에 있으며, 의미는 결코 고정될 수 없다고 본다. 마침표는 이 맥락에서 ‘종결’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의미 유예의 시작점을 나타낸다. 마침표 이후에도 의미는 계속해서 미끄러지며, 독자는 그 끝을 고정시키지 못한 채 끊임없이 해석의 가능성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마침표는 닫힘이 아니라, ‘연기된 열림’의 신호이다.

 

이외에도 독자 반응 비평이나 수용 미학과 같은 방법론은 마침표의 의미를 독자의 해석 행위에 따라 가변적으로 본다. 이 경우 마침표는 저자의 권위로서 의미를 종결짓는 상징이 아니라, 독자가 텍스트와 상호 작용한다. 새로운 해석의 출발점으로 삼는 ‘해석의 열쇠’로 기능한다. 즉, 독자는 마침표를 통해 문장이 끝났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금 텍스트 전체의 의미를 재구성하려는 사고 흐름을 시작한다.

 

최근에는 매체 비평이나 디지털 문학 비평의 등장으로 인해 마침표는 시간성과 시공간성을 동시에 담는 새로운 기호로 분석하기도 한다. 화면에서의 마침표, 하이퍼텍스트에서의 마침표는 더 이상 문장의 끝이 아니라 다음 페이지, 다음 링크, 혹은 다음 감각적 반응으로 넘어가는 ‘전환 기호’로 작동한다. 따라서 마침표는 단일 텍스트 안에서조차도 그 의미를 고정하지 않으며, 수많은 상호 텍스트성과 물리적 접속 가능성을 내포한 동적 기호로 탈바꿈해 나간다.

 

결론: 마침표, 텍스트의 무대 위에서

 

마침표는 결코 단순한 문장 종결자가 아니다. 현대 시의 창작 사조에서는 마침표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면서 시적 언어의 가능성과 미학적 실험을 확장한다. 동시에 다양한 비평 방법론은 이 작은 기호에 구조와 권력, 의미와 유예, 닫힘과 열림의 복합적 지층을 드러낸다. 시인은 마침표를 찍는 순간, 닫힘과 열림의 교차점에 서 있는 셈이다. 독자는 그 교차점에서 다시금 의미의 여정을 시작한다.

 

마침표는 종결의 표지가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여는 작은 문이다. 그 문을 통과할 것인가는, 시인과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3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5.10.22 07:33 수정 2025.10.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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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