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칼럼] 충무공 이순신의 임진왜란 초기해전 장계에 기록된 장수 숫자와 판옥선 숫자의 관계

윤헌식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조선 수군은 4차례에 걸쳐 출전하여 약 10번의 전투를 치러 모두 승리를 거두었다. 1592년에 조선 수군이 벌인 이들 전투는 통칭 ‘임진왜란 초기해전’으로 불린다. 조선 수군의 4차례에 걸친 출전 경과는 날짜 순서대로 충무공 이순신의 장계 「옥포파왜병장」, 「당포파왜병장」, 「견내량파왜병장」, 「부산파왜병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4차례 출전에 참전한 조선 수군은 전라좌수군, 전라우수군, 경상우수군이다. 4차례 출전 경과를 기록한 충무공의 장계에는 전투 일정, 전투 장소, 참전 장수, 조선 수군 선박 숫자, 왜선 숫자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충무공은 전라좌수군의 전공 위주로 장계의 내용을 작성하였다. 그 장계에 기록된 전라좌수군 소속 장수 숫자와 판옥선 숫자를 비교해보면, 흥미롭게도 두 가지 숫자가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제1차 출전에 관한 기록인 「옥포파왜병장」(1592년 5월 10일 작성)에 기록된 전라좌수군의 장수를 살펴보자. 다음의 표는 「옥포파왜병장」에 기록된 전라좌수군 소속 장수의 전술 편제, 관직, 이름을 장계에 등장하는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위 표에 나타난 전술 편제(위장, 부장, 척후장, 유군장, 통장, 한후장, 돌격장, 참퇴장 등)는 조선의 제5대 국왕 문종이 지은 병서 『오위진법』의 체제와 조선 초기의 분군법(分軍法)인 제승방략을 따른 것이다(정진술, 「조선수군의 전술신호 체계」, 『학예지』 15,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2008). 단, ‘대솔군관’과 ‘군관’은 전술 편제에 속한 명칭이 아니다.

 

「옥포파왜병장」에 따르면 제1차 출전 시기 조선 수군의 선박 규모는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이다. 이들 가운데 왜선을 상대로 본격적인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선박은 판옥선 24척이다. 그런데 위 표에 나열된 장수의 숫자는 24명으로서 판옥선 숫자와 거의 일치한다. (위 표에 충무공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위 표에 나열된 장수의 숫자와 판옥선 숫자가 거의 일치하는 점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눈치가 빠른 분은 이미 이들 장수가 판옥선 선장이라고 짐작하셨을 것이다. 위 표에 나열된 장수 가운데 특히 전술 편제가 부여된 장수는 선박을 지휘하는 선장이 틀림없다. 단, 전술 편제가 없는 일부 장수(일부 대솔군관과 군관)는 ‘학술적’으로 판옥선 선장임을 입증하기 어렵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투선의 선장은 본인이 지휘하는 선박 안에서 절대적인 권한과 함께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다. 전투 이후 승리에 대한 포상이나 패배에 대한 처벌 또한 선장에게 가장 많이 주어진다. 이러한 ‘상식’에 의거한다면, 전술 편제가 부여되지 않은 장수 또한 판옥선 선장일 가능성이 높다. 전투의 전과를 보고하는 「옥포파왜병장」을 작성할 때 권한과 책임이 가장 큰 선장의 이름을 빼놓고 선장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이름을 썼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위 표에 나타난 장수 가운데 송희립은 노량해전 시기 충무공 휘하 군관으로서 충무공과 같은 배에 승선했다고 알려져 있다. 만일 제1차 출전 시기에도 그러했다면, 위 표에서 송희립을 제외한 나머지 장수들과 충무공을 합한 24명이 판옥선 선장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두번째로는 제2차 출전에 관한 기록인 「당포파왜병장」(1592년 6월 14일 작성)에 기록된 전라좌수군 장수를 살펴보자. 다음의 표는 「당포파왜병장」에 기록된 전라좌수군 소속 장수의 전술 편제, 관직, 이름을 장계에 등장하는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당포파왜병장」에 기록된 전라좌수군 장수

 

「당포파왜병장」에 따르면 제2차 출전 시기 조선 수군의 판옥선 숫자는 23척이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제1차 출전에 비해 판옥선 1척이 줄었고, 대신 거북선이 출전하였다. 제2차 출전 시기 거북선의 숫자는 학자에 따라 1척 또는 2척으로 다르게 추정하고 있다. 위 표에 보이는 바와 같이 이기남의 전술 편제가 귀선돌격장이므로 그가 거북선 선장임은 쉽게 알 수 있다.

 

「당포파왜병장」의 기록을 살펴보면, ‘귀선돌격장 급제 이기남(龜船突擊將及第李奇男)’ 바로 뒤에 ‘신(이순신)의 군관 이언량(臣軍官李彦良)’이 나오는데, 이 두 사람 앞뒤의 장수들은 대부분 전술 편제가 기록되어 있다. 즉, 이언량은 전술 편제를 생략하고 기록한 것처럼 보인다. 만일 생략되었다면 그의 전술 편제는 그의 앞 사람 이기남의 전술 편제와 같을 것이다. 단, 이를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학자들이 거북선 숫자가 1척인지 2척인지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이기남과 이언량이 1척의 거북선에 함께 승선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이기남과 이언량을 제외하면, 위 표에 나열된 장수의 숫자는 23명으로서 제2차 출전 시기 판옥선 23척과 그 숫자가 일치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송희립이 충무공과 같은 배에 승선했다고 가정하면, 위 표에 나열된 장수들(이기남, 이언량, 송희립 제외)과 충무공을 합하여 23명이 판옥선 선장이라고 추정해볼 수 있다.

 

세번째로는 제3차 출전에 관한 기록인 「견내량파왜병장」(1592년 7월 15일 작성)에 기록된 전라좌수군의 장수를 살펴보자. 다음의 표는 「견내량파왜병장」에 기록된 전라좌수군 소속 장수의 전술 편제, 관직, 이름을 장계에 등장하는 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견내량파왜병장」에 기록된 전라좌수군 장수

 

「견내량파왜병장」에 기록된 수는 총 21명이다. 전라좌수사 충무공까지 합하면 총 22명이다. 제3차 출전 시기에도 이기남은 거북선 선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견내량파왜병장」의 기록을 살펴보면, ‘좌돌격귀선장 급제 이기남, 보인 이언량(左突擊龜船將及第李奇男 保人李彦良)’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언량은 제2차 출전 시기 기록인 「당포파왜병장」에도 그의 이름이 거북선 선장 이기남 뒤에 등장하므로 제2~3차 출전 시기 모두 거북선에 승선했던 점은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이기남과 마찬가지로 전술 편제가 ‘돌격장’으로 기록된 박이량도 거북선 선장일 가능성이 있다.

 

제3차 출전 시기 판옥선 숫자는 「견내량파왜병장」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장수의 숫자와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장계 뒷부분에 기록된 사상자 명단에 그들이 소속된 선박의 이름이 나타나 있으므로 이를 통해 어느 정도 판옥선의 숫자를 추정해낼 수 있다. 다음의 표는 「견내량파왜병장」에 기록된 제3차 출전 시기 선박의 이름이다. 

 

「견내량파왜병장」에 기록된 전라좌수군 선박

위 표에 나열한 선박 가운데 영 전령선은 협선이나 포작선으로 보인다. 전령선과 거북선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박은 그 이름으로 보아 모두 판옥선이 거의 확실하다. 「견내량파왜병장」은 낙안선에서 1명의 전사자가 나오고, 낙안 1호선과 2호선에서 각각 부상자 4명씩 발생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이들 낙안 배의 명칭으로 보아 낙안선은 낙안 1호선이나 2호선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점을 고려하면 위 표에 나타난 판옥선 숫자는 총 20척이 된다.

 

「견내량파왜병장」에 기록된 참전 장수는 충무공을 합해 총 22명이다. 여기서 거북선 선장 이기남과 이언량 2명을 제외하면 20명이 되는데, 이는 위 표에 나타난 판옥선 숫자 20척과 대략 일치한다. 만일 제1~2차 출전을 거치면서 일부 판옥선이 노후화되거나 또는 전투로 인한 손상을 입었다면, 제3차 출전 시기 전라좌수영에서 판옥선 20척만 출전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조정에 보고할만한 전공을 세우지 못하여 「견내량파왜병장」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판옥선 선장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왜냐하면 제2차 출전 시기 장계 「당포파왜병장」에 기록된 선박의 이름 가운데 순천 소속 판옥선인 순천 1호선(順天一船)과 순천 2호선(順天二船)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전라좌수영은 소속 고을(官)과 진포(鎭浦)는 5관5포로서 5관은 순천, 낙안, 보성, 흥양, 광양이며 5포는 방답, 사도, 녹도, 발포, 여도이다. 순천 소속 판옥선이 제2차 출전에는 참전하여 「당포파왜병장」에는 기록이 되었는데, 제3차 출전에는 참전하지 않아 「견내량파왜병장」에는 기록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이보다는 순천 소속 판옥선을 비롯한 일부 판옥선이 주목할만한 전공을 세우지 못하여 장계에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상자 명단에 기록된 사상자 소속 선박 이름 가운데 순천 소속 판옥선이 나타나지 않는 점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일본측 자료인 『고려선전기(高麗船戰記)』에 따르면 제3차 출전 시기 안골포해전의 조선 수군 선박은 큰 배 58척과 작은 배 50척이고, 큰 배 가운데 3척은 장님배(거북선)라고 한다. 이 기록에 언급된 큰 배 55척은 판옥선으로 보이는데, 「견내량파왜병장」에 경상우수군의 판옥선이 7척이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55척에서 7척을 제외한 48척이 전라좌수군과 전라우수군의 판옥선이 될 것이다. 이 48척 규모는 제2차 출전 시기 전라좌수군(23척)과 전라우수군(25척)의 판옥선을 합한 숫자와 일치한다. 즉, 『고려선전기』에 기록된 제3차 출전 시기 판옥선 규모는 제2차 출전 시기 판옥선 규모와 비슷하다.

 

물론 『고려선전기』에 나타난 판옥선 규모가 실제와 조금 다르게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제3차 출전 시기 거북선이 2척인지 3척인지도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므로 제3차 출전 시기 판옥선 숫자는 더더욱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다만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통해 제3차 출전 시기 판옥선 규모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상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수군의 제4차 출전은, 이를 기록한 「부산파왜병장」에 참전 장수 이름이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검토는 진행하기 어렵다.

 

 

[참고자료]

정진술, 「조선수군의 전술신호 체계」, 『학예지』 15,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2008

이민웅, 「한산대첩의 주요 경과와 역사적 의의」, 『이순신연구논총』 25,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16

조성도 역, 『임진장초』, 2010, 연경문화사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5.10.31 11:14 수정 2025.10.3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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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