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동생 지인의 부친상이 있었다. 나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사람이 죽으면 생각보다 그 여파는 굉장히 빠르고 넓게 퍼진다. 어쩐지 그날따라 검은 옷을 입고 싶더랬다. 어쩐지 여름이 다 지나서 내내 장마처럼 내리던 비구름이, 망자의 설움을 달래는 손수건같이 축축하더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 본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 유달리 다른 전통이 있다면, 유달리 길게 지내는 장례 문화다. 유교사회였던 조선 시대에는 신분이 높을수록 망자에 대해 기리는 기간은 비례했고, 체면을 중시 여기던 양반들은 곡비(哭婢)라도 두어 죽음의 기운을 달랬다. 또한 불교 전통을 계속해서 이어온 한국민들은 아직도 큰 어른이 돌아가시면 7일마다 7번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신 지 49일이 되는 날 49재를 지내기도 한다.
한 문명의 수준을 보려면 그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한반도의 장례문화를 보건대, 영혼을 달래는 데에 그리 긴 시간과 자원을 보탠 흔적들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성숙한 민족이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조상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헌데 고령화 사회와 낮은 출생률에 대해 혀를 끌끌 차는 것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게 된 요즘은, 그에 비해 얼마나 초라한가. 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그들이 활기차게 지내는 사회가 되는 일은 당연히 축복할 일이다. 하지만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예전처럼 사람이 태어나고 죽으면 한 마을이 내내 애경사로 술렁이는 것까지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장례식장을 찾아 병원 구석구석을 뒤져서 주차장 옆에 샛길을 지나 지하 계단으로 겨우겨우 내려가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보통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누군가의 죽음은 이렇게 구석진 곳에 내몰리게 된 것일까. 그러니 우리는 더욱 죽고 싶지 않다.
사실 우리의 발전한 장례문화는 죽은 자를 기리는 것에서 나아가, 살아남은 자들이 망자를 추억하고, 마음에 맺힌 원한과 설움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자는 여전히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이 되는 죽음이든, 말이 안 되는 죽음이든. 장례 문화는 우리 공동체의 유지와 복지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하지만 생명의 탄생도, 죽음도 지극히 사적인 것이 된 지금, 우리는 모두가 한번씩은 겪을 생성과 소멸에 대한 경외와 숙연함조차 잊어 가는 게 아닐까.
나는 우리가 스스로를 너무 과신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간혹, 아니 자주 한다.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도 함께 경험하고 극복하는 것이 도태된 요즘을 과연, 과거 사회에 비해 성숙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靈)을 기리기 위해 했던 모든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모두 자본화되고 축약되었다. 모든 것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의 마음도 그렇게 간단히 축약될 수 있을까. 우리의 삶과 죽음이 언제 그렇게 효율적이었던가.
죽음과 삶의 경계가 사실은 묘연한 것이라는 옛 성현들의 말은 뭣 하나 틀린 것이 없다. 다만 요즘은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사회라는 것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다.
방부제 같은 삶에 가끔은 질식할 것 같다.
[임이로]
시인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시집 <오늘도 꽃은 피어라>
임이로의 비껴서기 bkks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