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용의 인사노무이야기] "또 사람이 죽었다... 산업재해의 악순환, 누가 멈출 것인가”

“노동자의 죽음을 개인의 실수가 아닌, 구조의 문제로 보아야 할 때”

“또 한 명이 떨어졌다.”
언론 기사 속 익숙한 문장이 더 이상 충격을 주지 않는다. 건설 현장에서, 물류 창고에서, 공장에서 매일같이 사람이 죽거나 다친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 해에만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800명에 육박했다. 하루 평균 두 명이 일터로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숫자보다 ‘익숙함’이다. 사회는 이 죽음을 더 이상 비극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제도와 현장 곳곳에 스며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반복되는 죽음 앞에서 무감각해졌을까. 그것은 산업재해를 ‘사고’로 보는 시선 때문이다. 사고란 불가피한 우연처럼 들리지만, 이 죽음들은 사실상 예견된 결과다.


[사진: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이미지, 챗gpt 생성]

산업재해의 근본 원인은 현장보다 시스템에 있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여전히 ‘하청의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구조에 의존한다. 위험한 일은 대부분 외주업체의 몫이며, 이들은 낮은 단가에 시달리며 안전비용을 줄인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 씨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위험한 업무는 외주화됐고, 교육도 장비도 부족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정부는 이후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며 기업의 책임을 강화했지만, 시행 3년이 지난 지금도 실효성은 미미하다. 고용노동부의 집계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 중 70%가 ‘경영책임자 부재’를 이유로 불기소되거나 감형되었다. 결국 제도는 존재하지만 기업은 여전히 법망을 피하고, 노동자는 여전히 위험 속에 있다.


 

기업의 논리는 단순하다. “이윤이 먼저”다. 안전설비를 개선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비용이 증가한다는 계산이 앞선다. 그 논리는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과 맞물리며 더 단단해졌다. 일부 대기업조차 안전관리자를 형식적으로 두고, 하청업체에 안전관리 책임을 전가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생명은 숫자로 환산된다.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방치하는 정부의 태도도 비판받아야 한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논의는 수년째 공회전을 반복하고 있고, 감독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OECD 평균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한 산업안전 감독관 수는 ‘사고 이후 조사’에 급급할 뿐, 사전 예방 기능을 거의 수행하지 못한다. 결국 정부는 “사후 조치”에 머무르고, 기업은 “의무 이행”을 형식적으로 수행한다. 그 사이에서 죽음은 계속 쌓인다.


 

생명을 중심에 두는 사회로

산업재해는 기술이나 장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의 인식, 기업의 철학, 그리고 국가의 의지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먼저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산업안전감독을 독립기관화하고, 기업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또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여 위험의 외주화를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교육과 문화도 중요하다. 노동자 스스로 안전을 지킬 권리를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을 강화하고, 신고·보호 제도를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언론 역시 ‘단신 보도’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이제는 산업재해를 개인의 실수로 덮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현장에서 죽음을 피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의 그림자라면, 그 그림자를 지우는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누가 멈출 것인가? 결국 우리 모두가 멈춰야 한다.



산업재해는 한 사람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또 다른 “김용균”은 계속 생긴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 — 그것은 복지가 아니라 최소한의 인간 존엄이다.

 

 

 

 

 

 

작성 2025.11.08 12:34 수정 2025.11.0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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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