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모임은 전국에서 1천 명에 가까운 회원들이 참여하며, 금년으로 50년을 넘겨 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평생의 우정 같은 이 모임 안에서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 여성이 있다.
그런데 그제, 바로 그 일흔다섯 동갑내기 김희숙 씨(가명)가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평소 모임에서 만난 김 씨는 언제나 천사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의 잔잔한 미소는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평온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중에도 그 밝은 표정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는 열 일곱살에 교회에 입문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 것에 깊이 감사하며 살아왔다고도 전해진다. 마치 감사할 일만 골라내는 숙제를 평생 해낸 사람처럼 보였다.
별세 이틀째인 어제, 30여 명의 회원들이 모여 고인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이 추모의 자리에는 특히 우리 모임의 전현직 회장 여덟 명이 참석했다. 모임의 굵직한 역사와 명예를 상징하는 이들의 동참은 고인의 삶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매우 흔치 않은 풍경이었다.
순서에 따라 고인의 남편인 신정호 씨(가명)가 인사말을 했다. 그는 아내가 병을 앓기 시작한 순간부터 영면할 때까지의 과정을 덤덤히 이야기했고, 이어서 그녀의 아름다운 삶의 궤적을 들려주었다.
가장 마음을 울린 이야기는, 아내 김희숙 씨가 50년 결혼생활 중 시어머님(신 씨의 모친)을 48년 동안 한결같이 모셨다는 대목이었다. 지난 2년 전 돌아가실 때까지 그 지극정성으로 효성을 다했다고 한다. 남편 신 씨는 아내의 삶이 모든 면에서 아름답기만 했다고 회상했다. 그 증언을 듣는 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과연 저렇게 완전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었을까 하는 부끄러움과 숙연함에 고개를 숙였다. 오죽하면 남편이 "아내야말로 천국에 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증언했을 정도다. 이처럼 확신에 찬 남편의 목소리는, 단순한 사랑 고백을 넘어 한 삶에 대한 완벽한 찬사였다.
신 씨는 아내에게 감동한 나머지, 칠순 때 집안 잔치를 열었다 한다. 500만 원 상당의 선물을 준비했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표창장을 만들어 아내에게 전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모든 참석자가 깊이 공감했고, 그 진심 어린 회고에 참석자 전체로부터 두 차례의 우렁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장례식장에서 박수가 쏟아진 것은 정말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듣는 깊은 감동 스토리였다.
고인의 남편인 신 씨는 우리 모임의 산악회장을 오랫동안 지냈고, 지금은 감사를 맡고 있다. 그가 산악회장 시절에 제창했던 명문 구호는 바로 '백두산'이다. '100세까지 두 발로 건강하게 산에 오르자'라는 뜻이다. 건강과 장수를 염원했던 이 구호가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데, 정작 그 곁을 지키던 천사 같은 아내가 겨우 일흔다섯의 나이에 운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고 아쉽게 느껴진다.
칠순 선물이야 형편이 되면 할 수 있다지만, 아내에게 자기 이름으로 표창장을 수여할 생각을 했다는 것은 놀랍다. 거기에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넘어선 지극한 사랑이 느껴진다.
김희숙 님의 삶은 짧았으나, 그 깊이와 아름다움은 우리 모임의 역사에 영원히 박수 소리로 남을 것이다.
[문용대]
‘한국수필’ 수필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소설문학상 수상
‘지필문학’ 창립10주년기념 수필부문 대상 수상
‘한국예인문학, 지필문학, 대한문학, 문학고을’ 활동
‘대한문학 부회장’, ‘지필문학’ 이사
‘브레이크뉴스’ 오피니언 필진
수필집 ‘영원을 향한 선택’ ‘[날개 작은 새도 높이 날 수 있다’
이메일 : myd18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