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장은 대체로 기분이 좋지 않다. 성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기계발서의 밝은 표지와 긍정적인 문장이 먼저 떠오르지만, 실제 성장의 순간은 그와 거리가 멀다. 성장은 대개 불편함이라는 얼굴로 찾아온다. 익숙하던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잘해 오던 일이 갑자기 흔들릴 때, 혹은 스스로의 한계를 또렷하게 마주하는 순간에 성장은 시작된다.
문제는 우리가 이 불편함을 너무 빨리 제거하려 든다는 점이다. 불편하면 잘못된 신호라고 여기고, 불편하면 방향이 틀렸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불편함을 견디기보다는 즉시 해소하려 한다. 더 쉬운 선택지로 돌아가고, 덜 아픈 길을 택하며, 익숙한 언어와 방식 안에 머문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종종 정체다.
성장을 원하는 사회는 많다. 개인도 성장하고 싶어 하고, 조직도 혁신을 말하며, 국가는 경쟁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성장의 필수 조건인 불편함을 감당하려는 태도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 불편한 역설 속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왜 성장은 늘 불편한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 얼굴을 외면하려 하는가.
불편함을 회피하려는 태도는 개인의 성향만은 아니다. 사회적 환경 역시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기술은 더 빠르고 더 편리한 선택을 제공하고, 시스템은 시행착오를 줄이도록 최적화돼 있다. 실패를 줄이고, 불필요한 과정을 제거하는 것이 효율로 여겨진다.
이 과정에서 불편함은 점점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됐다. 불편함은 미숙함의 증거처럼 취급됐고, 고통은 개선의 대상이지 감내해야 할 과정으로 보지 않았다. 교육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답에 빠르게 도달하는 능력이 강조되면서, 헤매는 시간과 틀리는 경험은 낭비로 여겨졌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성장은 언제나 불편함과 함께했다. 산업의 전환기마다 기존 질서는 흔들렸고, 새로운 기술과 가치가 등장할 때마다 사회적 마찰이 발생했다. 개인의 성장 또한 마찬가지다. 새로운 역할을 맡을 때, 더 높은 기준을 요구받을 때, 기존의 자신을 넘어야 할 때 사람은 불편해진다. 이 불편함은 성장의 부산물이라기보다 출발점에 가깝다. 문제는 우리가 이 과정을 건너뛰려 한다는 데 있다. 불편함 없는 성장, 고통 없는 변화라는 환상이 오히려 성장을 지연시키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성장을 ‘확장’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기존의 인지 틀과 행동 범위를 넘어설 때 인간은 긴장과 불안을 느낀다. 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뇌는 익숙한 상태를 안전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시도를 위험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불편함은 위험 신호이기 이전에 확장의 신호일 수 있다.
조직 차원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다. 변화가 필요한 조직일수록 내부의 저항이 크다.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평가 방식, 새로운 문화는 기존 구성원에게 불편함을 준다. 이 불편함을 이유로 변화를 미루면 단기적 안정은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 성장은 어렵다. 사회적 관점에서도 불편함은 중요한 지표다. 공정성, 다양성, 지속 가능성과 같은 가치가 논의될 때 사회는 불편해진다. 기존의 관행을 재검토해야 하고, 누군가는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불편함을 회피하면 갈등은 잠시 가라앉을 수 있으나 문제는 축적된다.
결국 불편함은 개인, 조직, 사회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장의 징후다. 중요한 것은 불편함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다루는가에 있다.
불편함을 제거하는 데 집중한 사회는 역설적으로 더 취약해진다. 작은 불편도 감당하지 못하는 구조에서는 예기치 못한 충격에 대한 회복력이 떨어진다. 반면 일정 수준의 불편함을 경험하고 관리해 온 개인과 조직은 변화에 더 유연하게 대응한다. 성장의 본질은 적응이다. 적응은 기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건에 맞게 스스로를 조정하는 능력이다. 이 조정 과정에서 불편함은 필연적이다. 근육이 성장할 때 미세한 손상이 발생하듯, 역량이 확장될 때도 심리적·구조적 긴장이 발생한다.
문제는 불편함을 실패나 무능의 증거로 오해할 때 생긴다. 불편함을 느끼는 순간 방향을 수정하거나 멈춰 버리면, 실제로는 성장 직전에 멈추는 셈이 된다. 반대로 불편함을 학습의 신호로 인식하면 경험의 질이 달라진다.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그 불편함이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지 질문하게 된다. 성장을 이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이 지점에서 갈린다. 불편함을 제거할 대상이 아니라 해석할 정보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장기적인 격차를 만든다.

성장은 친절하지 않다. 성장은 설명서를 제공하지도, 즉각적인 보상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다만 불편함이라는 형태로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지금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무언가가 바뀌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불편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불편함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묻는 태도다.
성장은 늘 불편한 얼굴로 온다. 그 얼굴을 외면할 것인지, 아니면 정면으로 마주할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불편함을 완전히 제거한 곳에서는 성장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당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불편함은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피하지 않는 순간, 성장은 이미 시작됐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