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AI 의존 담론의 허구성 : 누구의 공포인가

이진서

ChatGPT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학생들이 과제를 AI에 맡기고, 직장인들이 사고와 업무를 외주화한 결과 인간의 지적 능력이 퇴화할 것이라는 경고도 뒤따른다. 그러나 이러한 담론은 전혀 새롭지 않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할 때마다 반복되어 온 오래된 공포의 변주에 가깝다.

 

기원전 5세기, 소크라테스는 문자가 기억력을 파괴할 것이라 우려했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는 그가 이집트 신화를 빌려 글쓰기가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을 연습하지 않게 만들고 결국 망각을 초래할 것이라 주장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크라테스는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고, 우리가 그의 이 주장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제자 플라톤이 그것을 문자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계산기의 등장, 컴퓨터의 상용화 역시 같은 방식의 불안을 반복 생산했다. 문명사는 새로운 도구에 대한 공포의 역사인 동시에, 그 공포를 넘어 대중이 도구를 전유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

 

여기서 문제는 ‘의존’이라는 개념 자체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누가,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의존을 규정하느냐는 질문이 빠져 있다. 과거 문자 해독 능력이 귀족과 성직자의 전유물이었을 때, 대중의 문해력 확산은 기존 지식 계급의 시선에선 지식의 무분별한 확산이자 질적 저하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을 무지로부터 해방시킨 역사적 전환이었다. 오늘날의 AI 의존 담론 역시 이와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도구에 대한 접근권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사회에서 ‘과도한 의존’에 대한 경고는 과연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 이 담론은 종종 기존의 지식 독점 구조를 자연화하고, 새로운 인지 도구가 만들어낼 평준화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수사로 기능한다.

 

역사는 대중이 결코 수동적 소비자에 머물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인쇄술의 확산 앞에서 교회는 성서의 대중적 해석을 두려워했지만, 대중은 문해력을 무기로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 냈다. 도구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의미는 언제나 사용자의 사회적 실천과 정치적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 ChatGPT 역시 사고를 대신하는 자동 장치라기보다, 질문을 조직하고 사유의 경로를 재편하는 하나의 인지적 도구로 전유되고 있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AI시대의 핵심적 불평등은 AI를 사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 비판적 사고를 어떻게 조직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인문학적 소양의 격차다. 이 능력은 개인의 성실함만으로 획득되지 않는다. 교육 접근성과 문화자본, 계급적 조건에 의해 구조적으로 형성된다. 아이러니하게도 AI 의존을 경고하는 담론은 바로 이 구조적 불평등을 은폐한다. ‘AI를 덜 쓰라’는 도덕적 권고는 문제를 개인의 선택으로 환원하면서, 누가 양질의 교육과 사유 훈련에 접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지워버린다.

 

인문학은 결코 비계급적인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교양이 아니라 세계를 해석하고 질문을 구성하는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AI시대에 이 권력은 더욱 선명해진다. 도구는 민주화되었지만, 그 도구를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의 분배는 여전히 불평등하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AI에 의존해도 되는가’가 아니라, ‘누가 AI를 통해 자신의 사유를 확장할 수 있으며, 누가 그 가능성에서 배제되는가’이다. 이 질문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불평등의 문제다.

 

결국 AI 의존 담론은 낡은 공포를 반복하다가 사라질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진짜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도구를 둘러싼 권력과 접근성의 구조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AI의 노예가 될지 모를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새로운 인지적 도구가 또 다른 배제의 장치로 작동하는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다. 기술은 인간을 확장한다. 그러나 그 확장이 누구에게 허락되는지는 여전히 사회가 결정한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5.12.16 10:43 수정 2025.12.1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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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