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주. 그는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울림이다. 전쟁과 고통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었던 그, 80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하듯 여전히 온 세상의 사랑과 평화의 아이콘 중의 하나이다.
2025년은 일제강점기 일본 유학 중 항일 사상으로 체포된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서러운 이슬로 사라진 80해가 되는 시점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를 여전히 아린 마음으로 기억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이 있었을까. 필자는 그를 연구하고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친 김우종 평론가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좋은 작품 뒤에는 빛나는 평론이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세상에 목소리를 냈을 때, 그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돋보이도록 조명해 주며 독자들에게 호감과 공감을 일으키는 힘은 평론가의 붓끝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좋은 평론은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고, 작가가 말하지 않는 부분 혹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의미까지도 밝혀내는 힘을 내포한다.
윤리를 중시하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절조(節操)를 지닌 교수이다. 그는 늘 문학의 가치가 단순한 언어의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시대의 진실을 마음 다해 진심으로 담아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로만 표현되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감동의 열매를 거둬야 진정한 문학인이라 말할 수 있음을 의미함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는 전쟁이 일어나고 확대된 시기에 죽어가는 인류를 작품 속에 담아내며 진심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죽음을 선언했던 진선미의 결정체라고 그는 평한다.
독자에게 진심 담은 위로와 깨달음을 주며 공감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윤동주 시인에게 김우종 평론가의 모든 가치관이 투영됨이다. 윤동주 시인이야말로 이 시대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인이라며 늘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을 더욱 밝혀줄 수 있는 상대적인 인물로 서정주 시인을 비판한다. 이 같은 그의 비평이 결국 시대를 넘어 지속되는 감정과 가치를 전하는 업적을 쌓은 것이다. 좋은 문학이 독자에게 위로와 깨달음을 주듯 좋은 비평이 윤동주를 공감하고 친일이라는 고질적인 병폐를 끊어내며 한국 사회를 변화로 이끄는 신성한 힘으로 작용하도록 이끌어 왔다.
김우종 평론가의 저서 『서정주의 음모와 윤동주의 눈물』은 서정주 시인의 친일 행적을 날카롭게 비판했고, 더불어 윤동주 시인의 시가 지닌 문학적 가치를 드높였다. 당시 문단에서 큰 영향력을 지녔던 서정주에 대한 비판은 문단 내에서 큰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으나 그는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를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80년이 지난 지금, 중학생들에게 물으니 윤동주 시인은 국어 시간에 배워서 아는데 서정주 시인은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의 시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김우종 평론가의 결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업적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하나를 꼽으라면 필자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일본에 알리고자 노력했음에 주목하고 싶다. 일본이 누구인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던 윤동주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윤동주의 시를 일본에 알리고 읽히기 위해 그는 일본 내에서 윤동주 시인의 추모 행사와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결국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과 후쿠오카의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을 비롯해 2025년 2월 16일 12시 30분, 일본 도시샤대학 예배당에서는 윤동주 시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전역에 윤동주 서거 80주기를 맞아 추도 물결이 이어졌다. 그가 얼마나 윤동주와 그의 시를 신뢰해야 이런 일이 가능할까. 그가 얼마나 흐트러짐 없는 판단과 식지 않는 윤동주를 향한 열정을 품고 있어야 이룰 수 있는 일일까. 윤동주 시인이 한반도를 넘어 일본을 비롯해 아시아 문학사에서도 의미 있는 존재로 자리 잡게 한 그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한국 문학사에서 윤동주 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리를 되찾아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몸소 겪으며 민족의 아픔을 잊지 않았던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김우종 평론가가 이끄는 ‘창작산맥’에서는 지난 2025년 2월 15일 (토) 오후 3시, 마로니에공원 다목적실에서 윤동주 시인 80주기 추모 행사를 개최했었다. 국민의례로 시작된 추모식은 일제강점기 아픈 역사를 여전히 기리며 여윤동 회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거행되었다. 시인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다짐 속에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주며 추모식의 분위기는 한층 숙연해졌다. 허선주 시인은 창작산맥에서 그동안에 있었던 윤동주 시인의 추모식을 모두 회상해 내었고. 그간 윤동주 시인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마음을 가득 담아내는 강연을 했다.
최태식 시인의 하모니카 연주로 고운 선율이 경건하고도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어 권영진 시인의 ‘새로운 길’ 낭송은 윤동주의 외롭고도 순수한 길을 따라가듯 감성을 이끌어주었다. 손희 시인과 김종각 시인의 ‘별 헤는 밤’ 시낭송 콜라보는 잊지 못할 그리움과 밤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날 윤동주의 시혼을 애틋하게 되새기게 했다. 최태식 시인의 ‘비애’ 낭송이 다시 이어지며 일제강점기의 아픔과 시인의 내면 깊은 곳의 슬픔을 절절하게 전달해 주었다. 참석자들은 일제히 윤동주의 시 세계를 다시금 회고했다.
헌화식이 이어졌다. 한 다발꽃에 시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아름드리 담아 헌화하며 윤동주의 정신이 지금 이 자리에도 살아있음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허선주 시인의 ‘윤동주를 찾아서’라는 강의는 시인의 삶과 작품을 되짚어보는 시간 이었고, 이어진 김우종 평론가의 ‘윤동주 생명시론’ 특강은 시인의 시가 단순한 저항시를 넘어 생명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 철학적 깊이를 지녔음을 재 조명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펼쳐진 사이채 극작가의 ‘시인의 귀로’라는 낭독극은 윤동주 시인의 내면을 연극적 형식으로 풀어내며, 마치 시인이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감동을 선사했다.
김우종 평론가는 ‘인류 최고의 아름다운 시인 윤동주’라고 다시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추모식은 단체촬영과 참석자들의 서명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윤동주 시인의 시와 정신은 모두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채 오래도록 남아 또 한 해의 획을 어김없이 그었다. 추모식은 윤동주 문학의 현재적 가치를 가슴 속 깊이 일깨워주는 시간이 되었다. 문학인의 역할에 대한 김우종 평론가의 확고한 신념은 97세 연로(年老)에도 변함이 없었다. 시대의 아픔과 함께 성장해 온 대한민국이기에 더욱 문학의 도덕적 역할이 중요한 신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김우종 평론가를 통해 윤동주의 시는 시대를 초월한 정신적 유산으로 최고의 가치와 찬사를 받으며 사랑과 평화의 상징으로 전해져왔다. 그는 여전히 윤동주 시인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묵묵히 연구하고 해가 거듭될수록 더 큰 조명을 아끼지 않으며 후배 문학인들의 가슴에 성찰을 남긴다. 문학이 미학의 도구가 아니라고…, 시대를 책임지는 일이 문학인의 사명이라고…, 그의 정신만큼은 후대에 길이 남아야 한다고…. 문학적, 역사적 신념을 기쁜 마음으로 일깨우고 있다. 그의 눈빛에 윤동주는 여전히 살아있다.
문학적 의미와 방향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 시대에, 김우종 평론가의 업적을 함께 기억하는 것은 어떨까. 윤동주 시인의 문학적 성취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제 그를 후대에 전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윤동주 시인의 80주기를 해 너머로 보내며, 김우종 평론가라는 '윤동주 전도사'의 삶도 되새겨야 할 때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