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마지막 달력 한 장을 뜯으면, 다시 붙일 수 없다. 그토록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치며 달려왔건만, 지나놓고 보니 허무하기 짝이 없다. 새해는 오지 말라고 해도 우리들 코 앞에 와있다. 그래서 또다시 모두가 희망의 레파토리를 돌린다. 새해가 되면 모두가 하나같이, 성공과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면서, ‘올해는 정말 열심히 살아야지, 행복해야지, 사랑해야지!’라고 다짐은 하면서도, 우물쭈물, 차차 하다가 아까운 시간을 다 놓치고, 그제야 또 반성문을 쓰고, 신발 끈을 동여매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도 매듭이 있어서 좋다. 이른바 우리의 삶을 리셋팅(resetting)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출발 선상에 있는 그 자체만 해도 은혜이고 행복이다.
갑자기 <지명길> 작가가 쓰고, <최진희> 씨가 부른 <사랑의 미로>가 생각난다. 나는 대중가요와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그 노래를 부를 줄 모른다. 하기는 찬송가도 옛날 1960년대 전후로 불렀던 찬송가밖에 모른다. 그러니 요즘 교회에서 부르는 가스펠 송은 내게는 별로다. 그래서 교회에서 가스펠 송을 모두가 신나게 부를 때, 나는 그저 입만 벙긋벙긋하는 수준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최진희 씨의 노래의 ‘끝도 시작도 없는 사랑의 미로...’라는 한 소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사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끝과 시작은 따로 따로가 아닌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 성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했다. 그러니 끝은 곧 시작이요, 시작은 끝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시작도, 끝도 애매모호하다. 사랑만 미로가 아니고 우리의 마음도, 정치도, 학문도 미로이고, 우리 삶 자체가 미로다. 그러니 이 세상의 앞 일을 예측하고, 예단하기는 정말 어렵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주가가 오르내리고, 나라마다 희비가 엇갈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회에서 법안을 하나 밀어붙이면 세상이 바뀐다. 표로 밀어붙이면, 불법도, 탈법도, 위법도 가결하여 합법이 된다. 그래서 모두가 불안하다. 이 땅에는 불의가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도적놈들이 버젓이 행세하고, 갑질을 해도 누구 하나 헛기침하는 지도자가 없다. 또 이 땅의 목회자들은 모두가 착한 분들이다. 목회자들은 세상의 영광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분들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고, 세상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목회자들은 이원론적(Dualism) 세계관을 성경인 것처럼 굳게 지키고 있으면서, 그저 자신들의 목회안보(牧會安保)에만 철두철미하고, 교회 성장에만 올인하고 있다. 최근에 어느 대형 교회 목사님의 성명서는, 교회를 지키려는 중심은 알 듯하나,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 건설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새해는 어찌할까? 해만 바뀔 뿐 정치도, 법조도, 교회도 미로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는 AI가 우리의 삶 전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몇 년 전의 사고방식으로는 새해를 살아갈 수 없다. 산업에도 사람 대신 로봇으로 대치되고 있다. 기술? 이제는 로봇이 알아서 척척 한다. 그러니 사람들만 점점 저만치 밀려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고 있다. AI가 변호사, 공인회계사, 회계사를 대신하니, 명문대학 나와서 자격증을 따봐야 밥 먹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일터가 무너지니 가정이 무너지고, 청년들은 결혼을 회피하기까지 한다.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못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청년들은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간다. 청년 실업은 그렇다 치고, 혈기 왕성한 분들이 조기 은퇴, 조기 퇴직해서 갈길 몰라 방황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라는 찔끔찔끔 돈을 주는 것이 정책이란다. 돈주머니를 찬 자들은 인심도 쓰고, 표도 모으고 있다. 말 그대로 <끝도 시작도 없는 미로>를 헤매고 있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우리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요, 소망의 닻인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 수 밖에 없다. 난파선 같은 이 세계에 그래도 이승만, 박정희가 일구어놓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와 한국의 천재들이 만들어낸 신기술 덕에 우리나라가 세계의 선진국, 선도국이 된 것만 해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과거 피땀 흘려 이룩한 자유대한 민국의 번영과 풍성한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 발전의 과실을 훔쳐 먹는 자들이 이 나라에 깔려 있다. 마치 오늘의 번영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져,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식의 오늘의 상황이 개탄스럽다. 그러므로 의식 있고 확고한 복음적 개혁 신앙을 가진 자들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무리 교회가 쇠락하고 있고, 서구 교회당이 문을 닫아도 한국교회는 제 二의 선교 부흥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래서 이 지구촌에서 한국교회가 희망이라는 것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늘 부르던 찬송이 자꾸만 오버렙 된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그리고 존 헨리 뉴먼(John Hen-
ry, Newmen, 1801~1890)이 작사한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 데에 빛 되신 주 한 걸음씩 인도>하실 줄 믿는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새로운 해이다. 끝도 시작도 없는 미로에서 탈출해서, 새로운 시작이 되시고, 새로운 기준이 되시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시는 알파와 오메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