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마음에는 오래된 상처가 있다
고립은 언제나 소란스러운 방식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하루씩 조금씩, 관계의 틈이 벌어지고 내 마음이 그 틈을 설명할 수 없게 될 때,
고립은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혼자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혼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고립은 외로움과 다르다.
외로움은 누군가를 바라보는 감정이지만, 고립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감정이다.
그래서 고립이 남기는 상처는 밖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남은 건 말하지 않은 마음, 설명되지 않은 감정, 그리고 사람에게 닿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마음 안에서 벌어진 일들
고립을 경험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방향으로 흐른다. 상처는 그 과정에서 생긴다.
첫째, 감정이 희미해진다.
예전에는 마음이 반응하던 장면에 반응하지 않게 된다.
누군가의 말에 설레고, 기대하고, 서운해하고, 화가 나던 마음이 멈춘다.
감정이 멈추는 순간은 상처의 순간이다. 상처는 피가 나지 않기 때문에 더 오래 간다.
둘째, 자기 자신에게 질문이 쌓인다.
“내가 문제일까.”
“나는 왜 이럴까.”
설명되지 않은 감정이 길어지면 이유는 나에게로 향한다.
타인의 표정이나 말투가 기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신에 대한 판단이 더 가혹해진다.
자기 의심은 천천히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자존감의 흠은 다시 고립을 두껍게 만든다.
셋째, 삶의 의미가 희미해진다.
사람은 의미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한다.
관계가 줄어드는 순간 삶은 의무와 생존으로 좁혀진다.
의미 없는 하루는 견딜 수 있지만, 의미 없는 삶은 견디기 어렵다.
고립은 삶에서 의미의 빛을 서서히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넷째, 연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고립된 마음은 사실 연결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결은 상처의 출처이기도 하다.
사람은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은 동시에 가까워지고 싶고 멀어지고 싶다.
이 모순이 오래될 때 마음은 방향을 잃는다.
다섯째, 안전이라는 이름의 공간을 잃는다.
마음의 안전은 타인의 이해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허락하는 여유에서도 만들어진다.
고립이 길어지면 여유는 사라지고, 마음은 어디에도 머물 곳이 없어진다.
그 불안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마음을 회복하는 일은 천천히 진행된다
고립이 남긴 상처는 관계로 해결되지만, 치유는 마음에서 진행된다.
마음의 회복은 언제나 느리다.
마음은 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다시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여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마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종종 ‘혼자 있음’을 견디는 법을 배우지만,
‘혼자였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은 배우지 않는다.
고립의 상처는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마음이 멈춰 있던 자리에서 다시 삶이 시작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회복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고립의 두 번째 얼굴을 이해한다는 것은, 혼자인 마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필자 소개]

신정희 칼럼니스트
해피마인드 대표
SNS상에서는 ‘해피제이’로 활동하면서 마음행복을 전하고 있으며,
긍정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마음챙김을 주제로
수많은 기업과 기관에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