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막힐수록 놀이는 깊어진다: 말더듬 여아를 위한 놀이치료가 언어보다 먼저 하는 일

말을 고치려는 순간, 아이의 마음은 닫힌다

놀이가 먼저 안전해질 때 말은 따라온다

말더듬 여아에게 놀이치료가 특히 중요한 이유

[놀이심리발달신문] 말이 막힐수록 놀이는 깊어진다: 말더듬 여아를 위한 놀이치료가 언어보다 먼저 하는 일  박혜진 기자 

말을 고치려는 순간, 아이의 마음은 닫힌다

 

아이의 말이 멈추는 순간, 어른은 대개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왜 말을 더듬지?” “어디가 문제일까?” “지금 고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작 아이는 그 순간 말을 멈추며 다른 일을 하고 있다. 마음을 살핀다. 분위기를 읽는다. 안전한지 확인한다. 말더듬 여아에게 말의 멈춤은 실패가 아니라 ‘조절’이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 말로 꺼내기엔 부담스러운 생각, 혹은 빨라진 마음을 잠시 붙잡는 방식이다. 그런데 어른이 그 순간을 교정의 대상으로 삼는 순간, 아이의 선택지는 줄어든다. 더 조심하거나, 더 침묵하거나, 더 숨는다. 놀이치료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방향을 달리 잡는다. 

 

놀이치료는 아이에게 “말해 봐”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어떤 상태인지 괜찮아”라고 전한다. 말이 아닌 놀이를 통해 아이가 자기 속도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말이 막힐수록 놀이는 깊어진다는 말은, 아이가 말 대신 놀이로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때 중요한 질문은 “언제 말을 더듬느냐”가 아니라 “어떤 순간에 말이 멈추느냐”다.

 


말더듬 여아, 왜 ‘놀이’가 먼저인가

 

유아기 말더듬은 발달 과정에서 비교적 흔하게 나타난다. 특히 여아의 경우 언어 이해력과 사고 속도가 빠른 반면, 이를 말로 조직하는 과정에서 긴장이 생기기 쉽다. 말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할 때 아이는 스스로를 조절하기 위해 멈춘다. 문제는 이 자연스러운 멈춤이 반복적인 지적, 재촉, 비교 속에서 ‘불안한 말하기 경험’으로 굳어진다는 데 있다.

 

놀이치료는 언어 이전의 소통 방식에 주목한다. 아이에게 놀이란 설명이 아니라 표현이고, 질문이 아니라 선택이다. 말로 묻지 않아도 아이는 놀이로 자신의 관계 경험, 통제 욕구, 불안 수준을 드러낸다. 말더듬 여아의 놀이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역할 놀이에서 말을 대신 행동이 많아지거나, 반복적 규칙 놀이를 통해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려 한다. 이는 말이 불안해질수록 세상을 통제 가능한 구조로 만들려는 시도다. 이런 아이에게 언어 교정 중심의 접근은 오히려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천천히 말해”, “다시 말해 봐”, “숨 쉬고 말해”라는 말은 아이에게 틀렸다는 메시지로 전달되기 쉽다. 반면 놀이치료는 아이가 이미 하고 있는 방식, 즉 놀이를 존중한다. 놀이 속에서 아이는 실패하지 않는다. 틀리지 않는다. 고쳐지지 않는다. 다만 표현할 뿐이다.

 


놀이치료가 만드는 ‘말 이전의 안전’

 

놀이치료의 핵심은 말더듬을 직접 다루지 않는 데 있다. 치료실에서 아이는 말더듬을 지적받지 않는다. 대신 놀이 선택권을 온전히 가진다. 어떤 장난감을 고를지, 어떻게 사용할지, 말을 할지 말지 모두 아이의 결정이다. 이 경험은 말더듬 여아에게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다. 말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된다는 경험, 더듬어도 중단되지 않는 상호작용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놀이치료 장면에서 아이는 종종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인형을 움직이고, 블록을 쌓고, 같은 상황을 반복한다. 어른의 눈에는 ‘말 연습이 없는 치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반복은 아이가 불안을 낮추고,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며,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이다. 말은 이 안정 위에서만 자연스럽게 나온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성별 맥락이다. 여아는 또래 관계와 어른의 반응에 민감하다. 말더듬이 있는 여아는 ‘잘해야 한다’는 기대를 더 빨리 내면화하는 경우가 많다. 놀이치료는 성취와 평가의 언어를 제거한다. 잘했는지, 틀렸는지 묻지 않는다. 대신 “지금 이 놀이가 너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함께 머문다. 이 태도가 쌓이면서 아이는 말하기를 다시 시도할 용기를 갖게 된다.

 


말은 훈련으로 자라지 않는다

 

말더듬 여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연습이 아니라 더 적은 압박이다. 놀이치료는 말더듬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말이 안전해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든다. 아이가 스스로 말할 준비가 되었을 때, 말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이 과정은 느리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빠른 교정이 남기는 상처보다, 느린 회복이 훨씬 오래 간다.

 

부모의 역할도 여기서 중요해진다. 놀이치료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가정에서도 같은 메시지가 유지되어야 한다. 말을 대신해 주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완성도를 요구하지 않는 태도다. 아이가 말을 더듬을 때 기다려 주는 것, 그 자체가 치료적 개입이다. 놀이치료는 치료실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모가 아이의 놀이와 말을 대하는 방식까지 포함한 ‘환경 치료’에 가깝다.

 


아이는 이미 말하고 있다

 

말더듬 여아는 말을 못 하는 아이가 아니다.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듣지 못할 뿐이다. 놀이 속에서, 행동 속에서, 멈춤 속에서 아이는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놀이치료는 그 신호를 말로 바꾸기 전에 먼저 존중한다. 말이 막힐수록 놀이가 깊어진다는 말은, 아이가 더 섬세하게 자신을 지키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언제 아이의 말을 고치려 했는가. 그리고 언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봤는가. 말은 마음이 안전하다고 느낄 때 가장 먼저 돌아온다. 그 출발점이 바로 놀이이다.


 

부모가 바꿔야 할 것은 훈련이 아니라 태도다

 

말더듬 여아의 놀이치료적 접근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아동 놀이치료 전문기관이나 언어·심리 통합 상담센터의 정보를 확인해 보길 권한다. 가까운 지역 놀이치료 센터 상담을 예약하거나, 부모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은 시작이다. 아이의 말보다, 아이의 놀이를 먼저 바라보는 선택이 변화를 만든다.

작성 2026.01.15 17:56 수정 2026.01.1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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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