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비평] ‘섬망’ 속 할아버지의 손을 빌린 정부… 강제동원 피해자의 존엄은 어디에 있는가
고(故) 이춘식 할아버지, 인지능력 불분명한 상태서 ‘변제 수령’ 서명 논란 윤정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책임 면피용’ 졸속 행정에 쏟아지는 비판의 목소리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상징이자 역사의 산증인이었던 고(故) 이춘식 할아버지가 생전 마지막 순간에 남긴 서명을 두고 거센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 ‘제삼자 변제안’에 반대해 왔던 할아버지가 위독한 상태에서 돌연 수령 확인서에 서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특히 당시 할아버지가 섬망(의식 혼탁) 상태에 있었다는 자녀의 증언은, 정부가 실적과 책임 면피를 위해 고령의 피해자를 기망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본지는 인권과 존엄이 실종된 이번 사태의 본질을 날카롭게 비평한다.
■ ‘섬망 상태’의 서명, 그것은 진정한 동의인가?
최근 유족들에 의해 공개된 바에 따르면, 이춘식 할아버지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배상금을 수령하기로 한 확인서에 서명할 당시, 할아버지는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심각한 섬망 증세를 겪고 있었다.
기망적 행정 절차: 평생을 일본의 사죄와 직접 배상을 요구하며 투쟁해온 고인의 신념이, 의식이 흐릿한 짧은 순간의 서명 하나로 뒤바뀌었다. 이는 법률적 효력을 차치하더라도 도덕적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처사다.
졸속 추진의 민낯: 정부 재단 측은 ‘피해자의 자발적 수용’을 강조해왔으나, 이번 사태는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고령의 피해자가 처한 취약한 상황을 교묘히 이용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었다.
■ 재단의 ‘책임 면피’ 전술과 무너진 사회적 정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이토록 무리하게 서명을 받아낸 배경에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성과를 뒷받침하기 위한 '실적 쌓기'가 있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역사학 전문가 A씨는 "정부가 주장하는 제삼자 변제안의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생존 피해자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인륜마저 저버린 행정력을 동원했다"며 "이는 일본 기업의 책임을 면제해주기 위한 한국 정부의 자발적 조공 외교의 비극적 단면"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적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시민사회 단체들은 이번 서명이 무효임을 주장하며, 고인의 평생 정체성이었던 '사죄 없는 배상 거부'의 뜻을 훼손한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2,000만 원 남짓한 배상금으로 100년의 한을 덮으려 했던 정부의 전술이 오히려 역사의 거대한 저항에 직면한 셈이다.
■ 전문가 분석: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인권 변호사와 정치학자들은 이번 사건이 단순한 서명 논란을 넘어 '국가의 품격'과 직결된 문제라고 경고한다.
인권법 전문가 김기현씨는 "인지 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의 서명을 근거로 채무가 소멸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민법상의 신의성실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국가가 자국민의 인권 회복이 아닌, 가해 국가의 편의를 위해 자국민을 수단화했다는 점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심리 전문가 문정민 원장은 "섬망 상태의 노인에게 서명을 강요하는 행위는 정서적 학대에 가까운 폭력"이라며 "정부가 한 개인의 삶과 가치관을 무너뜨리면서 얻고자 하는 '외교적 이익'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역사는 ‘포토샵’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정부가 할아버지의 손을 빌려 적어 내려간 서명은 역사의 진실을 가릴 수 없다. 연세대 치대생들이 포토샵으로 의료 과실을 가리려 했던 것처럼, 정부 역시 졸속 행정으로 역사의 상처를 덮으려 했으나 그 구멍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떠났지만, 그가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과 정의의 가치는 남겨진 우리에게 무거운 과제를 던졌다. 메디컬라이프는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권력의 횡포를 감시하고, 진정한 인권 회복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이 사안을 끝까지 추적 보도할 것이다. 역사는 권력자의 서명이 아닌, 억울한 자들의 눈물과 진실로 기록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