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에서 남은 온기, 〈버닝 메모리〉가 말하는 ‘지워지지 않는 감정’

기억의 표면 위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

불에 그을린 경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의 빛

균열 속에서 살아 있는 온기 — ‘파괴’가 아닌 ‘누적’의 미학

 

 

 

〈버닝 메모리〉를 마주하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불에 그을린 듯한 가장자리와 균열의 리듬이다. 화면 중앙의 붉은 갈색 면은 마치 오래된 벽이나 금속판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 노출된 물질의 피부를 닮았다. 표면은 매끈하지 않다. 곳곳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스며든 흰색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 균열은 단순한 파손이 아니다. 오히려 ‘기억의 잔상’이 물질로 침착된 형태에 가깝다. 작가는 파괴의 흔적 속에서도 질서와 균형을 찾아낸다. 마치 한 사람의 내면을 가로지른 시간이 표면 위에 자연스럽게 각인된 듯하다.


이 작품의 질감은 “시간이 지나며 기억이 굳어지고, 동시에 무너져가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갈라진 표면은 고통의 흔적이자, 견딘 시간의 증거이다. 〈버닝 메모리〉의 가장자리에는 불길처럼 번지는 노란빛의 경계가 있다. 그것은 단순한 색의 대비가 아니라, 감정의 온도를 상징한다. 불은 파괴이자 정화이고, 동시에 재생의 상징이다. 


이 노란빛은 식지 않은 기억의 온기처럼 느껴진다. 완전히 검게 타버리지 않고, 남아 있는 미묘한 밝음은 “기억은 우리를 태우지만, 동시에 빛을 남긴다”는 역설을 전한다. 작가는 불의 에너지를 ‘파괴의 끝’이 아닌 ‘새로운 감정의 시작’으로 치환한다. 관람자는 이 경계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며, 자신 안의 기억과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이 노란 선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정의 경계선’이다. 타버린 시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빛, 그것이 작가가 제시하는 인간적 회복의 메시지다.

 

이 작품의 균열은 무작위처럼 보이지만, 일정한 호흡을 유지한다. 표면 전체에 퍼져 있는 균열의 패턴은 작가의 통제 아래 이루어진 구성이다. 그 결과 화면은 불균형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품는다. 작가는 파괴를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균열을 통해 ‘누적의 미학’을 드러낸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쌓인다. 상처는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표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버닝 메모리〉는 이 점에서 “감정의 진화”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그 안에는 ‘잊지 않기 위해 견디는 시간’의 무게가 녹아 있다. 작가는 물질의 변화와 인간의 감정 변화를 병치하며, 예술을 통해 기억의 지속 가능성을 탐구한다. 균열은 파괴의 결과가 아니라, 존재가 계속 살아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버닝 메모리〉는 특정한 서사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람자의 기억이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긴다.


한 사람은 그것을 ‘지나간 관계의 흔적’으로, 또 다른 이는 ‘스스로 견뎌낸 시간의 기록’으로 읽는다. 이 작품의 힘은 바로 그 개방성에 있다. 보는 이의 내면을 비추며, 각자의 기억을 불러낸다. 그렇기에 〈버닝 메모리〉는 단순한 시각 예술을 넘어, 감정의 거울이자 개인적 서사의 무대가 된다. 일상 속 공간에 놓였을 때조차 그 불빛은 과하지 않다. 오히려 조용한 오후의 햇살처럼 스며들어, 삶의 표면 위에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버닝 메모리〉는 “기억의 소멸”이 아닌 “기억의 변형”을 이야기한다. 그 표면 위에서 감정은 불에 타듯 아프지만, 동시에 새로운 온기를 남긴다. 불길은 지나가고, 남은 것은 빛이다. 그 빛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예술이 존재하는 근거일 것이다.   

 

 


 

작성 2026.01.21 15:57 수정 2026.01.2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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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