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통찰인가, 불꽃의 열정인가? ‘신(שׂ)’과 ‘쉰(שׁ)’의 위태로운 균형

절제와 열정 사이에서 완성되는 인간성, 당신의 점은 어디에 찍혀 있는가?

신(שׂ)... 내면의 심연을 비추는 냉철한 지성과 분별의 빛

쉰(שׁ)... 모든 것을 태우고 부수는 파괴와 창조의 에너지

AI 이미지 (제공: 미디어 울림)

 

열정이라는 이름의 양날의 검

 

불은 인류에게 문명을 선물했으나, 동시에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 내면의 에너지 역시 이와 같다. 무언가를 향해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은 삶을 전진시키는 동력이 되지만, 방향을 잃은 뜨거움은 자신과 타인을 모두 태워버리는 독이 된다. 히브리어 알파벳의 스물한 번째 글자인 '신/쉰(שׁ / שׂ)'은 이 역설적인 에너지를 한 몸에 품고 있다.

 

글자의 모양은 세 갈래로 솟구치는 불길을 닮았다. 그러나 이 글자가 지닌 진정한 신비는 그 위에 찍히는 작은 '점' 하나에 있다. 점이 왼쪽에 찍히느냐(שׂ, 신), 오른쪽에 찍히느냐(שׁ, 쉰)에 따라 그 성격은 얼음과 불만큼이나 극명하게 갈린다. 이것은 우리 인생에서 에너지를 어디로 집중하고,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오한 상징을 던진다.

 

 

꿰뚫어 보는 지혜와 씹어서 부수는 힘

 

먼저 점이 왼쪽에 찍힌 '신(שׂ, Sin)'에 주목해 보자. 이 글자는 분출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내면으로 침잠하는 통찰을 의미한다. 히브리어로 지성이나 이해력을 뜻하는 '세켈(שֵׂכֶל, Sekhel)'의 핵심이 바로 이 '신'에 있다. 쉰이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라면, 신은 그 화염 속에서도 사물의 본질을 냉철하게 꿰뚫어 보는 빛이다. 무작정 덤벼들어 부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질서를 읽어내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지혜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등불처럼, 신은 행동하기 전에 먼저 '보는' 힘을 상징한다.

 

반면, 점이 오른쪽에 찍힌 '쉰(שׁ, Shin)'은 결이 다르다. 이 글자의 어원은 '이빨(שֵׁן, Shen)'이다. 이빨은 단단한 음식물을 잘게 부수고 씹어 소화시키는 파괴적인 동시에 건설적인 기관이다. 따라서 쉰은 외부의 시련이나 거친 환경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해 '분쇄'하는 강력한 활동력을 상징한다. 또한, 불(אֵשׁ, 에쉬)의 속성을 완성하는 글자가 '쉰'이며, 평화(שָׁלוֹם, 샬롬)를 여는 첫 글자 역시 '쉰'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인생의 뜨거운 불꽃들이라 할 수 있는 삶의 난관들을 제대로 다스리고 소화해낼 때(쉰의 이빨로 씹을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는 영적 소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좌우의 대립을 넘어선 제3의 조화

 

유대 카발라 전통에서 이 글자의 세 줄기 형상은 대립하는 가치들의 통합을 상징한다. 왼쪽 줄기는 ‘심판과 절제’를, 오른쪽 줄기는 ‘자비와 사랑’을 나타내며, 가운데 줄기가 이들을 하나로 묶어 균형을 잡는다. 여기서 점의 위치는 이 균형의 무게중심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준다.

 

왼쪽의 신이 자신을 성찰하고 법도를 지키려는 구심력이라면, 오른쪽의 쉰은 뜨거운 사랑과 헌신으로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는 원심력이다. 지혜만 있고 사랑이 없으면 냉혹해지기 쉽고, 사랑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맹목적이게 된다. 신의 지성으로 내면을 비추어 불꽃이 번지지 않도록 다스리되, 쉰의 열정으로 인생의 땔감을 태우는 것, 그것이 히브리어 스물한 번째 글자가 가르쳐주는 삶의 기술이다. 신이 '무엇을 볼 것인가'를 묻는다면, 쉰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묻는다.

 

 

분별이 있는 반복만이 변화를 만든다

 

이 글자는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도 중요한 통찰을 준다. 변화를 뜻하는 '쉰누이(שִׁנּוּי, Shinnui)'와 반복을 뜻하는 '샤나(שָׁנָה, Shana)'는 모두 이 글자를 뿌리로 공유한다.

 

우리는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지만(샤나), 그 반복되는 시련을 '쉰'의 이빨로 치열하게 씹어 소화할 때 비로소 새로운 차원으로의 변화(쉰누이)가 일어난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왼쪽 점의 '신', 즉 분별력이다. 분별력이 없는 반복은 고통스러운 굴레에 불과하지만, 지혜가 더해진 반복은 정화의 과정이 된다. 불순물을 태워 순금을 만드는 용광로처럼, 우리 삶의 찌꺼기들을 태워버리고 남겨야 할 본질만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신'과 '쉰'이 공존하는 성숙한 삶의 모습이다.

 

 

당신의 점은 어디에 찍혀 있는가?

 

히브리어 스물한 번째 글자 '신/쉰(ש)'은 우리 마음의 온도계를 점검하게 한다. 지금 당신의 삶은 너무 차갑게 식어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지나치게 뜨거워 주변을 태우고 있지는 않은가?

 

진정한 성숙은 점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물러나야 할 때는 왼쪽의 신이 되어 고요히 자신을 비추고, 행동해야 할 때는 오른쪽의 쉰이 되어 세상을 향해 뜨겁게 투신해야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 중 하나인 '샷다이(שַׁדַּי, Shaddai)'는 '쉰'으로 시작한다. 이는 모든 것을 다스리는 전능자의 힘을 의미함과 동시에, 그 힘이 자비로운 어머니의 품(רַחַם, Raham)처럼 따뜻한 온기를 지녔음을 시사한다. 힘이 세질수록 마음의 점을 왼쪽(신)으로 옮겨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닐까?

 

아울러 당신의 마음 문에 새겨진 이 불꽃 같은 글자를 바라보라. 냉철한 지성(신)으로 길을 비추고, 뜨거운 열정(쉰)으로 오늘을 살아가라. 그 좌우의 균형이 완벽하게 맞닿는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타지 않는 떨기나무와 같은 신성한 평화, '샬롬'(שָׁלוֹם)을 조우하게 될 것이다.

 

 

 

작성 2026.01.22 09:11 수정 2026.01.2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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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