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마다 펼쳐지는 작은 약속
주말이 되면 우리 가족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시간이 있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나, 세 사람이 식탁 위에 둘러앉아 꺼내 드는 하나의 게임, 바로 ‘모두의 마블’, 흔히 부루마블이라 불리는 보드게임이다.
특별히 정해 놓은 규칙은 없지만, 주말에 집에 머무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 상자가 식탁 위에 올라온다. 그 시간은 마치 우리 가족만의 약속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산타할아버지가 남기고 간 선물
이 게임은 지난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이다. 아직은 장난감이 더 익숙할 나이임에도, 아들은 이 보드게임을 유난히 아낀다. 주말이 되면 먼저 말을 꺼낸다.
“아빠, 우리 그 게임 할까?”
그 한마디에 나는 자연스럽게 상자를 꺼내 들고, 아내는 식탁을 정리한다. 그렇게 시작되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같은 테이블, 같은 시선
게임 판을 펼치고 말을 고르는 순간, 집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TV가 켜져 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화면을 향해 흩어져 있던 시선이 하나로 모이고, 주사위를 굴리는 소리와 말이 이동하는 작은 움직임에 모두의 시선이 따라간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재미를 넘어선 이유
이 게임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재미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가족이 같은 규칙 안에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이 크다.
각자의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각자의 화면을 바라보며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같은 테이블 위에서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이 단순한 구조가 요즘의 일상에서는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진다.
일곱 살 아이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교실
이제 일곱 살이 된 아들에게 이 게임은 놀이이자 배움의 시간이다. 주사위를 던지며 숫자를 세고, 얼마를 내야 하는지 계산하며, 남은 돈을 다시 확인한다.
“아빠, 여기 오면 얼마 내야 해?”
“그럼 지금 내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어?”
질문은 끊이지 않고, 그 질문 하나하나가 작은 공부가 된다.
숫자를 넘어 개념으로
돈을 주고받는 과정 속에서 아들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개념을 배운다. 돈이 줄어든다는 것, 돈이 늘어난다는 것, 그리고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게임이라는 안전한 틀 안에서 경험한다.
랜드마크를 세울지 말지 고민하고, 빌라를 하나 더 지을지, 아니면 다음을 위해 남겨둘지를 생각한다. 아직은 서툴지만, 그 고민 자체가 이미 배움이다.
실패를 허용하는 공간
물론 아들은 종종 이기고 싶어 한다. 돈이 줄어들면 속상해하고, 벌칙 칸에 멈추면 얼굴이 금세 굳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부러 바로 설명하지 않는다.
“괜찮아, 게임은 원래 이런 거야”라는 말 대신,
“그럼 다음엔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건넨다.
아내 역시 옆에서 조용히 기다려 준다. 가르치지 않아도, 게임은 스스로 답을 보여 준다.
부모가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며, 운과 판단이 어떻게 섞이는지 아들은 자연스럽게 배워 간다. 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느낌보다, 함께 ‘겪는다’는 느낌에 가깝기 때문이다.
부모가 앞서 가르치기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규칙으로 움직이며 같은 경험을 나누는 시간은 생각보다 깊은 배움을 만든다.
화면 대신 기억이 남는 시간
TV를 켜 두면 시간은 흘러가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게임을 하다 보면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으로 남는다. 주사위를 던지며 긴장하던 표정, 뜻밖의 행운에 웃음을 터뜨리던 순간, 속상함을 꾹 참으며 다시 시작하던 모습까지. 그 모든 장면이 우리 가족의 기록이 된다.
게임을 통해 배우는 진짜 가치
어쩌면 이 게임은 돈의 개념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이기 이전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얻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이보다 먼저, 어른인 내가 다시 배우게 된다.
사소해 보이지만 소중한 한 시간
주말의 한 시간 남짓한 게임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는 함께 웃고, 함께 고민하고, 같은 테이블에 머무르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아들은 숫자를 배우고, 나는 기다림을 배우며, 아내는 그 모든 과정을 따뜻하게 지켜본다.
함께 생각해볼 질문
우리는 가족과 ‘같이’ 있는 시간을 얼마나 의식적으로 만들고 있는가.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고민하기 전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주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함께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지 않은 시대에, 가족이 함께 머무는 시간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선택이 되었다. 당신의 가족은 어떤 방식으로 같은 시간을 나누고 있는가.
평범한 시간이 가장 깊은 배움이 된다
모두의 마블, 부루마블. 이름은 화려하지만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배움은 아주 평범하다. 함께 앉아 웃고, 함께 고민하며, 같은 규칙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나는 이런 평범한 시간이야말로 가족이 함께 만들어 가는 가장 값진 배움이라고 믿는다. 아이에게 남는 것은 게임의 승패가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작은 일상을 기록하여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