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큐 왕국의 경제적 번영은 명나라(중국)와의 조공 무역에만 의존한 결과가 아니다. 일본(야마토)과의 교역은 왕국 경제를 지탱한 또 하나의 핵심 축이었다.
1458년 주조된 만국진량의 종(万国津梁の鐘) 명문에서 류큐는 스스로를 “일본과 입술과 이처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배를 만국의 가교로 삼아 무역으로 번영하는 나라”라고 정의했다. 이는 류큐가 일본과의 교류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류큐와 일본의 교역은 공적 외교와 민간 상업이 병행되는 이중 구조로 운영되었다. 공적인 경로는 무로마치 막부에 사절을 파견하는 방식이었고 사적인 경로는 사카이(堺),하카타(博多),쓰시마(対馬) 등의 민간 상인들과의 거래였다.
류큐의 무역선은 아마미 제도를 거쳐 규슈 서안과 쓰시마를 경유해 일본 본토로 향했다.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들은 류큐가 가져오는 남방의 진귀한 물품을 매우 높이 평가했으며 류큐 사절단은 일본 상류 사회로부터 후한 대접과 상업적 특혜를 받았다.
일본과의 교역은 류큐가 추진하던 중계 무역을 완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품에는 일본도(刀劍),부채,칠기 같은 고급 공예품과 구리가 포함되었다. 류큐는 이 물품들을 명나라에 다시 수출해 상당한 이익을 남겼다.
반대로 류큐는 중국에서 들여온 비단,도자기와 동남아시아에서 조달한 후추,소목(蘇木),상아,남방주 등을 일본 시장에 공급했다. 특히 동남아시아산 향료와 약재는 일본 내에서 전략 물자로 취급되며 고가에 거래되었다.
15세기 후반 무로마치 막부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일본 내 치안이 불안정해지고 왜구 활동이 다시 활발해졌다. 이로 인해 류큐 무역선이 직접 일본으로 향하는 빈도는 감소했다. 대신 일본 상인들이 직접 나하항으로 들어와 거래하는 방식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 나하항은 일본 상선을 포함해 각국의 선박과 상인이 모여드는 국제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1609년 사쓰마 번의 침공 이후 류큐는 일본 막번 체제에 편입되었고 일본과의 경제 관계는 사쓰마의 강력한 통제를 받게 되었다. 사쓰마 번은 류큐에 조공 무역 자금을 빌려주는 대가로 흑당(黑糖)과 우콘(鬱金)을 독점적으로 매수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다.
이 시기 등장한 것이 다시마 로드(Konbu Road)였다. 18세기 말 홋카이도(에조치)에서 생산된 다시마가 일본 상선을 통해 오사카로 운송된 뒤 사쓰마를 거쳐 류큐로 유입되었다. 류큐는 이를 명·청나라에 수출하고 중국산 비단과 약재를 수입했다. 19세기 중반에는 대중국 수출품의 70~90퍼센트를 다시마가 차지할 정도로 일본 산물은 류큐 경제의 생명선이었다.
일본과의 교역은 류큐 왕국이 단순한 섬나라를 넘어 동아시아 물류의 중심지로 기능하게 만든 핵심 요인이었다. 류큐는 일본의 우수한 수공예품을 중국에 소개하고 중국과 남방의 문물을 일본에 전달하며 동아시아 경제 네트워크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사쓰마 침공 이후 경제적 주권은 크게 제약되었으나 일본과 중국을 잇는 중개자로서 축적한 부와 기술은 류큐 특유의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는 토대가 되었다.
류큐 왕국의 번영은 단일 외교 노선의 산물이 아니었다. 일본과의 교역은 류큐 경제를 지탱한 또 하나의 기둥이었으며 이 이중 외교·무역 구조야말로 류큐를 해양 왕국으로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