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화면 속 따뜻한 숨결, ‘귤이 있는 정물’이 남긴 여운

흩어진 귤, 지나간 시간의 잔향을 담다

눈으로 보는 정물이 아닌, 손의 기억을 불러오는 회화

고요하지만 따뜻한 시간의 미학

 

캔버스20호 아크릴, 옻, 황토

 

 

〈귤이 있는 정물〉을 마주했을 때, 관람객의 시선은 가장 먼저 바닥을 향한다. 가지런히 놓이지 않은 귤들, 일부는 껍질이 벗겨진 채 열려 있고, 일부는 윤기 나는 막에 싸여 있다. 정물화가 흔히 보여주는 ‘완벽히 정리된 사물의 질서’ 대신, 이 화면은 누군가가 잠시 자리를 비운 뒤의 잔상을 담고 있다.


귤의 위치와 모양, 그리고 그 주변의 작은 그림자들에는 생활의 리듬이 남아 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정물’이라기보다 ‘이미 지나간 시간’에 가깝다. 작가는 완벽함보다는 흔적을 택했다. 귤 하나하나에 스며든 불균질한 붓 터치는 인간의 손길, 그리고 그 손길이 남긴 온도를 기억하게 한다.


또한 항아리에서 위로 뻗은 매화 가지와 꽃은 정물의 정적을 깨뜨리는 요소다. 가지의 불규칙한 선과 작게 핀 꽃들은 화면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계절의 변화와 시간을 암시한다. 이 항아리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기억의 그릇’처럼 보인다. 한때 무언가를 담았을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매화가 꽂혀 있다. 그 공허 속에는 시간의 여운이 깃들어 있다. 정물 속의 정적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가장 깊은 이야기는 그 침묵 속에서 피어난다.

 

〈귤이 있는 정물〉은 색의 대비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바탕의 청록색은 차분하고 서늘하며, 귤의 주황빛은 따뜻하고 현실적이다. 이 두 색은 충돌하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색감은 두 가지 세계가 만나는 지점을 그린다. 바탕의 청록색은 차갑고 고요하다. 반면 귤의 주황빛은 따뜻하고 현실적이다. 두 색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대비를 통해 조화로운 긴장을 만든다.


청록색은 정물의 배경이 아니라, 시간의 배경처럼 느껴진다. 그 위에 놓인 주황빛 귤은 일상의 온기, 가족의 식탁, 오후 햇살의 부드러움을 상징한다. 이 대비는 회화적 구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고요함 속의 따뜻함’, ‘정지된 순간 속의 생명력’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귤이 있는 정물〉의 가장 큰 매력은 ‘촉각적 회화성’에 있다. 두껍게 쌓인 물감층, 긁히고 겹쳐진 질감, 화면을 따라 흐르는 붓의 방향이 관객의 시선을 넘어 손끝의 기억을 자극한다. 그림을 보는 순간, 마치 귤 껍질의 거친 표면이나 병의 차가운 유리를 손으로 만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시각 예술이 단순히 ‘보는 행위’가 아니라 ‘감각의 복합체’임을 상기시킨다. 작가는 눈으로 그리되, 손으로 느끼게 한다.

 

〈귤이 있는 정물〉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본다. 눈길을 끄는 대신, 시선을 머물게 한다. 그 안에는 일상과 예술이 맞닿은 미묘한 지점이 있다. 흩어진 귤, 매화가 있는 항아리, 청록과 주황의 대비는 각각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된다.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형태를 바꾸어 남는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말한다. 예술은 특별한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온 일상 속에서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작성 2026.01.22 15:48 수정 2026.01.2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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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