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상식여행] 베르사유궁전에 화장실이 없었던 까닭은?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으로 꼽히는 베르사유궁전. 거울의 방, 끝없이 이어지는 정원, 화려한 연회와 의식으로 가득 찬 이 궁전에는 한 가지 믿기 어려운 사실이 있다. 수천 개의 방을 갖춘 베르사유궁전에 ‘제대로 된 화장실’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7세기 루이 14세가 완성한 베르사유궁전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권력의 무대였다. 하지만 이 웅장한 건축물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위생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장 큰 이유는 근대적 하수 시설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을 이용해 오물을 처리하는 수세식 화장실은 19세기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사진: 베르사유 궁전을 관람 중인 관광객의 모습, gemini 생성]

당시 프랑스 궁정에서는 고정된 화장실 대신 요강(chamber pot) 이 일반적이었다. 귀족과 왕족은 방 안이나 복도, 심지어 커튼 뒤에서 용변을 보고 요강에 처리했다. 사용한 요강은 하인들이 수거해 밖으로 버리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베르사유궁전이 항상 수천 명의 귀족과 수행원들로 붐볐다는 점이다. 공식 행사나 연회가 열리는 날이면 궁전 안은 악취로 가득 찼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위생보다 체면과 격식을 중시하던 문화다. 당시 귀족 사회에서는 공개적인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 품위에 어긋난다고 여겨졌다. 용변은 ‘보이지 않게 처리해야 할 사적인 일’이었고, 이를 위해 독립된 공간을 따로 설계하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다. 궁전 건축의 초점은 오로지 권력 과시와 미학, 동선의 상징성에 맞춰져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루이 14세 본인도 이러한 불편을 그대로 감수했다는 사실이다. 태양왕으로 불린 그는 하루 일과를 공개 의식처럼 진행했지만, 화장실 문제만큼은 해결하지 못했다. 일부 고위 인사 전용 ‘간이 변소’가 있긴 했으나, 이는 예외적인 시설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베르사유궁전은 화려함 뒤에 숨겨진 비위생의 상징으로도 회자된다. 역설적으로 이 불편함은 이후 유럽 사회가 공중위생과 도시 하수 시스템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18~19세기를 거치며 상하수도 기술이 발전하고, 화장실이 건축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오늘날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베르사유궁전은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과거의 흔적은 여전히 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가장 화려한 공간이 가장 불편한 공간일 수 있었다는 사실, 이것이 베르사유궁전이 남긴 또 하나의 황당하지만 의미 있는 역사다.

 

 

 

작성 2026.01.29 08:28 수정 2026.01.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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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