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큐 왕국이 중앙집권적 관료 국가로 완성되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제도 중 하나는 신분을 ‘보이게’ 만든 복장 규범이다.
제2쇼씨 왕조 제3대 국왕인 쇼신왕(尚真王, 재위 1477~1526)은 무력과 행정뿐 아니라, 복장과 장신구를 통해 권력 구조를 시각적으로 고정시키는 통치 방식을 확립했다. 관리가 머리에 두른 하치마치(ハチマチ)와 꽂은 비녀 칸자시(簪)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왕권을 정점으로 한 위계 질서를 상시적으로 드러내는 정치적 도구였다.
하치마치는 류큐 관리들이 공적 공간에서 착용하던 관모(冠帽)로, 쇼신왕 대에 이르러 신분 구분의 핵심 표지가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1524년, 하치마치의 색으로 관직 서열을 구분하는 6색 파관 제도가 공식적으로 확정되었다.
가장 상위 계층은 보라색(자색)을 착용할 수 있었으며, 그 아래로 황색, 적색, 청색 등이 엄격히 배치되었다. 이 색상 체계는 궁정이나 의례 현장에서 관리의 지위를 즉각적으로 판별하게 했고, 개인의 발언권과 행동 범위를 자연스럽게 규정했다. 왕의 명령 없이도 질서가 유지되도록 설계된, 일종의 시각적 통제 장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모자와 더불어 신분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핵심 요소는 비녀, 칸자시였다. 쇼신왕은 1509년, 비녀의 재질을 신분별로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해 계층 간 경계를 더욱 명확히 했다.
왕족과 최상위 귀족인 우둔(御殿) 계급은 금 비녀를 사용할 수 있었고, 이는 통치 혈통의 상징이었다. 친와리(親方)와 같은 상급 관료층은 은 비녀가 허용되었으며,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 관료와 특정 평민 계층은 황동, 나무, 대모(玳瑁) 등으로 제작된 비녀만 사용할 수 있었다. 재질의 차이는 곧 사회적 발언권과 권력의 차이를 의미했다.
이러한 복장 규정은 류큐의 신분 구조와 정확히 맞물려 작동했다. 국왕을 정점으로, 왕자와 안지(按司)가 속한 우둔 계급이 최상층을 형성했고, 그 아래에 세습 귀족과 사족 계층이 배치되었다. 페친(親雲上) 계급은 다시 상·하위로 세분화되어, 하치마치 색상과 비녀 재질의 조합 역시 달랐다.
반면, 계도(系図, 족보)를 갖지 못한 평민은 원칙적으로 하치마치를 착용할 수 없었으며, 장신구 사용에도 엄격한 제한을 받았다. 복장은 개인의 취향이 아닌, 국가가 규정한 사회적 위치의 표식이었다.
쇼신왕의 복장 제도는 단순한 신분 과시가 아니라, 중앙집권 강화를 위한 정치 기술이었다. 평민에게는 금속 비녀뿐 아니라 우산 사용, 가죽 신발 착용, 기와집 건축, 거북등 형태의 무덤 조성까지 제한되었다. 이는 사치와 권위의 독점을 통해 지배 질서를 안정시키려는 의도였다.
더 나아가 17세기 후반 설치된 계도좌(御系図座)를 통해 모든 사족의 가계를 문서로 관리하면서, 외형적 복장 질서와 행정적 신분 관리가 결합되었다. 무기 회수 정책과 맞물린 이 제도는, 류큐가 비교적 평화로운 해상 교역 국가로 번영할 수 있었던 내부 조건을 마련했다.
쇼신왕이 확립한 하치마치와 칸자시 제도는 권력이 일상 속에서 어떻게 시각화되고 내면화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색과 재질이라는 단순한 요소를 통해 왕권 중심의 질서를 고정한 이 복장 정책은, 류큐 왕국이 단순한 섬 사회를 넘어 정교한 관료 국가로 발전했음을 증명한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오키나와(류큐) 문화가 지닌 독특한 위계 감각과 미의식의 역사적 뿌리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