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이 그림을 마주했을 때, 나는 의도치 않게 걸음을 멈췄다. 물고기가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이동’이 아닌 ‘정지’가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보다는, 그 자리에 ‘어떻게 머무르고 있는가’에 시선이 갔다. 작품의 제목이 ‘유영(游泳)’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그 정적의 의미가 와닿았다. 수면 아래의 세계는 생각보다 고요하고,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묘한 위안을 받았다. 마치 오래된 기억의 한 장면이 천천히 떠오르는 듯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물고기의 움직임이 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붓질은 단호하지 않고, 마치 작가의 손끝이 잠시 망설인 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 ‘머뭇거림’은 물결이 아닌 시간의 흔적처럼 보였다. 물은 흐르지만, 이 그림 속 시간은 정체되어 있다. 나는 그 정체의 리듬에 나도 모르게 동화됐다. 어쩌면 이 작품이 보여주려는 건, 움직임의 끝이 아니라 ‘멈춤의 가치’일지도 모른다. 그 느린 유영 속에서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너무 빠르고, 사람들은 너무 멀리만 본다. 그러나 이 물고기는 단지 ‘지금’을 산다.
지느러미는 놀라울 만큼 섬세했다. 반투명한 결이 빛을 받아 번들거렸고, 그 결 사이로 작은 물살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은 생생한 현재의 움직임이라기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의 흔적처럼 보였다. 나는 그 잔상을 따라가며, 오래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수조 속 금붕어를 바라보던 순간. 물속의 빛이 지느러미를 통과할 때마다, 마치 시간이 천천히 녹아내리던 그 장면 말이다. 작가는 아마도 그 순간의 감각을 회화로 되살린 듯했다. 손끝의 떨림이 남긴 흔적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내 감정에 닿는다는 사실이 놀랍다.
멀리서 보면 배경은 단순한 녹색이다. 하지만 눈을 조금만 오래 두면 그 안에서 수많은 층이 보인다. 연두, 비취, 이끼, 그리고 거의 검은 녹까지. 이 색들은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덮고 다시 드러나며 ‘기억의 수심’을 만든다. 나는 그 속으로 시선을 깊이 잠기게 했다. 그림은 물고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 나를 끌어당기는 건 그 배경이었다. 그곳은 현실이 아니라 마음의 풍경 같았다. 언젠가 보았던, 하지만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 어느 오후의 물빛. 그 막연한 익숙함이 묘하게 안심을 준다. 마치 ‘기억의 장소’처럼.
제목조차 조용히 물결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일까, 관람객마다 다른 장면을 본다. 어떤 이는 물고기의 외로움을, 또 다른 이는 물의 평온함을 읽는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머무는 마음’을 느꼈다. 작가는 유희(遊戱)의 자유로움과 유영(游泳)의 느림을 함께 담아낸 듯하다. 그림을 다시 뒤돌아본다면 여전히 물고기는 그 자리에 있다.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같은 자세로. 그러나 그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다르게 느껴짐, 이것이 이 작품의 진짜 생명력일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림 속 시간은 머문다. 그리고 그 머무름 속에서 관람자는 자기 자신의 속도를 되찾는다. ‘유영’은 물속의 생명만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고요를 그린 회화다. 나는 오늘 그 고요 속으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