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정답을 내놓는 시대다.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처리되는 효율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지만, 12년 차 강사로서 현장에서 마주하는 진실은 조금 다르다.
강의실의 화려한 스크린이 꺼지고 디지털의 소음이 멈춘 순간, 비로소 교육생들의 진짜 눈빛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수백 페이지의 자료보다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는 강사의 응원 한마디, 동료들의 박수 소리. 그 따스한 온기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도 현장에서 배운다. 과연 우리는 이 초지능 시대에 걸맞은,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온도를 품고 있는가.
모든 것이 완벽한데, 왜 우리는 여전히 허전할까?
이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하고 빠른 도구를 가졌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다. 스마트폰 하나면 세상의 모든 정보를 1초 만에 알 수 있는데, 왜 우리는 더 외롭고 답답한 기분이 들까?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다. 하지만 그 매끄러운 문장 속에는 정작 나의 고민이나 땀방울이 들어있지 않다. 누구나 똑같은 버튼을 눌러 똑같은 답을 얻는 세상에서, 나만의 색깔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빠르고 정확한 것이 실력인 세상에서 우리는 어느새 기다리는 법을 잊어버렸다. 무언가 궁금해지면 우리는 참지 못하고 검색창부터 켠다. 1초의 로딩 시간조차 견디지 못한 채 조급해하며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완벽한 정답이 아니라, 그 정답을 찾기 위해 쩔쩔매며 보낸 서툰 시간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남들이 비효율적이라고 말하는 그 느린 시간 속에서 비로소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머물 자리가 생긴다.
하이테크(High-Tech) 시대일수록 하이터치(High-Touch)가 필요하다.
최근 기업 교육의 흐름을 보면 AI를 비롯한 디지털 교육이 홍수를 이룬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이 정작 목말라하는 것은 바로 소통과 관계다. 이들은 세대 간의 벽, 서로 다른 업무 방식 때문에 갈등하며 마음의 문을 닫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AI 도구를 손에 쥐여주어도 서로를 향한 불신과 오해가 가득한 조직에서는 기술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꽉 막힌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아주 아날로그적이다. 교육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소 쑥스럽지만 진심 어린 칭찬과 격려를 주고받는 시간을 가진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이들도 함께 웃으며 대화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무장해제된다. 굳어있던 얼굴이 따뜻한 미소로 변화하는 그 짧은 찰나, 강의실 안에는 보이지 않는 온기가 흐른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고 조직을 하나로 묶는 것은 세련된 알고리즘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따뜻한 시선과 응원이다. 우리가 AI 시대에 갖춰야 할 가장 강력한 스펙은 어쩌면 거창한 기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차가운 화면 너머에서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타인의 서툰 진심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안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진짜 실력이다.
거대한 인공지능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종종 무력해진다.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풍경을 보며 ‘나는 그저 우주의 먼지일 뿐인가’ 라는 자조 섞인 한숨을 내뱉기도 한다. 하지만 천문학자 심채경 박사의 말처럼, 우주의 먼지는 사실 정말 대단한 존재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먼지들이 서서히 뭉쳐질 때 비로소 빛나는 별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하나의 먼지이자, 동시에 별이 될 씨앗인 셈이다.
기술이 세상을 차갑게 식히고 오직 효율이라는 잣대로만 인간을 평가할 때, 우리가 증명해야 할 것은 숫자나 성과가 아니다. 그보다는 내 곁에 있는 동료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곁을 내어주는 아주 작은 온기다. 나만의 고유한 온도를 지닌 개개인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 뭉쳐질 때, 비로소 삭막했던 관계에 활기가 돌고 사회는 다시 빛을 발한다.
초지능 시대가 도래해도 결코 대체될 수 없는 단 하나의 실력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의 마음을 읽고 온기를 나누어 '함께'를 만들어가는 능력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모든 것이 정답만을 향해 달려가는 디지털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나만의 온도를 잃지 않고 있는가. 오늘 내 곁의 누군가에게 계산되지 않은 따뜻한 사람의 자리를 내어주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