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날 대추차와 팥시루떡

사진출처;freepik

엄마를 모시고 사는 언니네가 이사하는 날입니다.

경황이 없을 것 같아 제가 아침밥을 준비하기로 했는데 늦었습니다.
 
 당근을 볶고, 계란 부치고, 김치 볶고, 김을 구우니 가기로 한 시간이 돼버렸어요그대로 각각 반찬 그릇에, 밥은 찬합에, 수저 젓가락, 물 모두 보냉백에 켜켜이 담아 녹색 신호들을 운 좋게 지나쳐오니 이삿짐은 날라지고 있고 엄마는 욕실에 있습니다간단하게 씻겨드리고 옷 갈아입히고 준비한 밥을 함께 먹었습니다. 소풍온 듯이.
  뜨끈하게 갓 지은 밥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싸한 바람을 눅입니다 언니네 반려견 아리와 엄마, 함께 산책하다가 엄마를 노인주간보호센터 차에 태워드리고 이번에는 아리 걸음에 맞춰 주변을 크게 돌았습니다


짐을 빼는 동안 씻을 요량으로 3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에 갔다가 투썸에서 카페라테 한잔 하며 눈여겨보던 주식이 하락한 틈에 몇 주 주워 모았습니다.
 1시쯤 짐을 다 뺏겠다 싶어 나오니 피로로 얼굴이 내려앉은 언니가 구피를 담은 휴대용 어항을 들고 잔금 처리를 위해 부동산으로 향하고 이삿짐은 이사 갈 집으로 출발하고 형부는 반려견 아리를 데리고 언니를 따라나섭니다


잠시 일 보러 집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가 옵니다. 인터넷뱅킹에 오류가 있어 엄마를 모시고 은행에 가야 한답니다. 그래서 노인주간보호센터에 가서 엄마를 모시고 은행으로 가는데 해결했으니 돌아가라 해서다시 센터로 모셔다 드리고 이사 갈 집으로 갔습니다.

짐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일로 밤을 새운 형부는 으슬으슬 춥다고 몸을 덥히러 사우나 가고 저는 예민해진 아리를 산책시키는 중에 언니에게 전화가 옵니다.

확정일자를 30일 안에 못 받아서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니 부동산에 다녀오라 합니다. 부동산으로 달려가 보니 저쪽 집 부동산 중개인과 임대인이 불려 와서 계약서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이제 주민센터에 가서 확정일자를 받으면 되는데 도보 10분 거리라 해서 네이버 지도를 켜고 걸어갔습니다. 시간이 늘어 20분 너머 도착한 주민센터에 미소 짓고 있는 직원이 유별나게 반갑습니다. 엄마 주민증과 도장, 전세계약서를 내미니 제 주민증도 달랍니다.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주민증을 들고 있는 언니가 잠깐 다녀가야 할 테지요.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세워 돌아섰습니다.


편의점에 들러 짐을 나르고 있는 사람수대로 따뜻한 커피와 시원한 물을 사고 빵집을 물어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찾아 샌드위치를 넉넉하게 샀습니다. 묵직해진 장바구니를 들고 찬바람에 맞서 돌아가는 길이 멉니다. 해가 넘어가려는데 일이 더디니 인원이 충원된 모양입니다. 현관으로 짐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어느 곳에 놓으면 좋을지를 소리칩니다. 언니가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늘까지 받아야 하는 확정일자는 제 몫인 거죠. 집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주민센터에 도착하니 마감 10분 전. 다행히 확정일자를 받고 언니집으로 가니 속이 텅 빈 이삿짐 차량이 아파트를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평수를 줄여서 이사온 거라 짐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실에도, 방에도 널브러져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라 엄마방부터 급하게 정돈하고 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수영장에서 샤워하며 친해진 언니와 근황을 얘기하며 이사한다는 말끝에 이 언니도 같은 동 위층에 살고 있다는 우연을 서로 신기해하며 이삿날 잘하면 볼 수 있겠네라고 했던 그 언니가 찾아온 겁니다.

텀블러에 대추차와 따끈한 팥시루떡을 들고.


따끈하게 가져오려니 어쩔 수 없이 텀블러를 가져왔다고 빈 텀블러는 엘리베이터 옆에 놓아달라 합니다. 혹시 빈 그릇을 돌려주기 부담스러운 마음까지 읽고 배려합니다. 직접 우린 대추차라는 말을 남기고 수다스럽지 않게 총총 사라집니다.
 
 너무나 고마워서 세상 따뜻하고 세상 고마운 말을 모두 쏟아내고 싶은데
 언어가 마음을 따라오지 못합니다
 
 진하게 우려낸 뜨끈한 대추차 한 모금에 언니도 형부도 저도 길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바싹 마른 피부에 생기가 도는 듯했고, 어깨를 짓누르던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듯, 쫀득한 팥시루떡에 흩어졌던 마음이 모이는 듯했습니다.     

따스한 마음내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는 느낌을 경험하며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라 오늘 그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와닿는 시간입니다.


K People Focus 최영미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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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6.02.01 14:25 수정 2026.02.0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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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