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가치를 만드는 사람들_ 요가 강사 키야티(전희성) 편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내 몸이 말하는 적절한 속도

세상엔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이 훨씬 많다

그걸 인정하는 게 나약함이 아니라 성숙함이다

▲ 각자의 숨이 저마다의 리듬으로 매트 위를 채우고 있었다. [사진=전희성 제공]

 

고요 속에서 들리는 것

서울 한 골목, 요가 스튜디오의 문을 열자 고요함이 먼저 다가왔다. 그 고요 속에서 들리는 건 사람들의 호흡 소리. 길고 깊게, 때론 짧고 얕게. 각자의 숨이 저마다의 리듬으로 매트 위를 채우고 있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 전희성(92년생). 요가명 키야티(Khyati). ‘통찰’이라는 뜻을 가진 이 이름은 아쉬탕가 수련 시절 선생님께 받은 선물이다. 32세의 그녀는 차분했다. 그 차분함은 저절로 온 게 아니었다. 치열하게 흔들리고, 천천히 중심을 찾으며 얻어낸 것이었다.

 

“예전엔 잠을 못 잘 정도로 생각이 많았어요.”

 

그녀의 고백은 많은 이들의 현재와 겹쳐졌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 내일 할 일, 지나간 실수, 타인의 시선, 미래에 대한 불안. 그 모든 것이 뒤엉켜 잠을 빼앗던 시간들. 그녀도 한때 그런 날들을 살았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읽지 못하던 시절

2016년 이전, 그녀의 삶은 '성실함'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성실함은 양날의 칼이었다. 일은 치열했고, 경쟁은 끝이 없었다. 퇴근 후 자유시간마저 운동으로 채워야 했다. 쉬면 뒤처진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건, 그녀가 그 시절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힘든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이 평온함도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본 사람만이 깊은 호흡의 가치를 안다. 그녀의 과거는 그래서 ‘버려야 할 짐’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었다.

 

매트 위에서 배운 것들

2016년, 그녀는 요가를 처음 접했다. 취미로 시작한 것이 어느새 그녀의 삶을 바꿔놓았다. 요가 매트 위의 세계는 놀랍도록 단순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 몸을 움직이면 됐다. 내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면 됐다. 옆 사람과 비교할 필요도, 내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어요.” 

 

그녀가 만난 선생님들에게는 분명함이 있었다. 힘들게 몰아붙일 땐 확실히 밀어붙였고, 풀어줄 땐 정확하게 풀어주었다. 긴장과 이완의 타이밍을 아는 분들이었다.

 

“나의 몸인데 내가 내 몸을 잘 안 읽고 그냥 사용하고 있었더라고요. 몸을 잘 살피고 관찰하고 읽어 움직이고 난 후, 딱 쉴 때 느껴지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통찰.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몸이 무엇을 말하는지 듣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녀도 다르지 않았다. 동작이 잘 되는 옆 사람을 쳐다보며 자신과 비교했다. 비교는 자책으로, 자책은 무리로 이어졌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도 억지로 했다. 울기도 했고, 다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쌓이며 변화가 찾아왔다. 안 되던 동작이 어느 날 갑자기 된 것이다. 특별히 노력한 것도 아닌데, 그냥 때가 됐다.

 

“언젠가는 되거든요.”

그녀의 이 한마디는 요가 동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삶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 “저는 소소한 오늘만 사는 것 같아요. 오늘을 살다 보면 언젠가 그날을 살고 있더라고요.” [사진=전희성 제공]

 

강사가 된다는 것

이전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요가는 그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내 몸에 맞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성실하지만 회복 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 그게 자신이라는 걸 그녀는 요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강사가 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혼자 수련할 땐 자기 몸만 관찰하면 됐다. 하지만 수업을 하려면 수강생 한 명 한 명을 읽어내야 했다. 그들의 표정, 호흡, 움직임의 미세한 떨림까지.

 

“처음엔 선생님들께 계속 물었어요. 이 고민이 언제 끝나냐고. 수강생들의 표정이 계속 신경 쓰였거든요. 재등록을 안 하면 내 탓인 것 같았고, 눈치가 보여 내 방식대로 끌고 가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쌓이면 된다.”

요가에서 배운 그대로였다. 그 말대로 됐다.

 

욕심과 균형 사이

하타 요가를 배우던 시절, 한 선생님이 그녀에게 묘한 말을 했다.

 

“욕심을 내면서도 욕심내지 말아라.”

 

언뜻 모순 같지만, 그게 요가의 본질이었다. 힘을 주되 긴장을 놓는 것. 확장하되 무리하지 않는 것.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욕심을 아예 버려라’는 말은 현실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욕심이 자신을 갉아먹게 두면 안 된다.

 

“안 되는 건 내려놓게 됐어요. 제가 해결할 수 없는 범위는요.”

 

이 말은 가볍게 들리지만, 실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세상엔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이 훨씬 많다. 그걸 인정하는 게 나약함이 아니라 성숙함이라는 걸, 그녀는 요가를 통해 배웠다.

 

갈비뼈 사이 한 뼘의 공간

그녀가 수업에서 가장 신경 쓰는 순간이 있다. 수강생들을 강하게 밀어붙여 몸을 확장시킨 뒤, 그 힘을 풀어주는 순간.

 

“갈비뼈 사이가 확장되면 숨이 더 풍성하게 들어와요.”

 

꽉 조여진 근육을 펼치면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으로 호흡이 깊이 들어온다. 충분히 확장한 다음, 힘을 툭 풀었을 때 몸에 흐르는 느낌. 그 찰나의 순간을 그녀는 수강생들이 경험하길 바란다.

 

“좋은 수련이 뭐냐고요? 말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경험시켜드리고 싶어요.”

 

어떤 것들은 언어로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느껴야 한다. 그 느낌을 나누는 것. 그게 강사로서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이었다.

 

단계 단계, 급하지 않게

최근 들어 그녀는 자신의 수업 방식을 좀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급하지 않게, 선생님들께 배운 단계를 차근차근 전하고 있더라고요. 그 단계마다 하나씩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수업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녀는 완성된 동작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다.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회원들의 고집을 부드럽게 꺾는다. 무조건 힘을 주려는 습관,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생각. 그럴 때마다 그녀는 말한다. 요가는 그게 아니라고.

 

“단단하지만 유연하고 싶어요.”

그녀가 추구하는 건 그런 상태다. 흔들리지 않되 부러지지 않는 것. 중심이 있되 경직되지 않는 것.

 

꾸준히, 오래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녀는 잠깐 생각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거창한 목표는 없어요. 꾸준히 오래 하고 싶어요.”

 

세상은 늘 ‘더 크게, 더 빠르게’를 외친다. 하지만 그녀는 그 흐름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었다. 작은 목표. 꾸준함. 오래 가는 것.

 

“저는 소소한 오늘만 사는 것 같아요. 오늘을 살다 보면 언젠가 그날을 살고 있더라고요.”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는다. 오늘을 온전히 살면 미래는 자연스럽게 온다.

 

에필로그

인터뷰를 마치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평범한 요가 강사인 제게, 가꿔지지 않은 모습의 저를 궁금해해 주시는 게 신기했어요. 이런 기회는 흔치 않잖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한 울림이 느껴졌다. 그녀는 자신을 ‘가꿔지지 않았다’고 표현했지만, 정작 그 가꿔지지 않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 화려하게 포장되지 않은 진심. 세상의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는 용기.

 

전희성, 키야티. 자기 몸에 맞는 일을 하고,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

 

“옳고 그름은 없는 것 같아요. 다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이니까, 최대한 나에게 맞는 일을 선택하는 거죠.”

 

혹시 지금 당신도 갈비뼈 사이가 꽉 조여진 채 버티고 있는가. 

잠깐 멈춰 당신의 몸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어보시길.

 

✍ ‘보통의가치’ 뉴스는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 한 걸음씩 나아가는 '보통의' 삶을 응원합니다.

작성 2026.02.01 18:17 수정 2026.02.01 18:31

RSS피드 기사제공처 : 보통의가치 미디어 / 등록기자: 박성심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