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9문
Q. 29. How are we made partakers of the redemption purchased by Christ? A. We are made partakers of the redemption purchased by Christ, by the effectual application of it to us by his Holy Spirit.
문 29.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까? 답.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은 그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구속을 효과적으로 적용해 주심으로 말미암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 6:11)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에 4:30)

인류의 경제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는 '결제'와 '배송'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이다.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최고급 물건을 구매했더라도, 그 물건이 내 손에 도착하여 내 삶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면 그 구매는 이론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를 '라스트 마일(Last Mile)'이라 부른다. 상품이 고객의 현관문 앞에 놓이는 그 마지막 단계가 완성되어야 비로소 거래의 효용이 발생한다.
기독교 신학의 거대한 구원 서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논리가 작동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9문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지불하신 우주적 대가가 어떻게 이천 년이라는 시간과 수만 킬로미터라는 공간을 넘어 '나'라는 개인의 실존에 도달하는지를 다룬다.
그리스도께서는 앞선 문답들에서 확인했듯이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 완벽한 구속(Redemptio, 레뎀티오)을 획득하셨다. 이를 신학적으로 '획득된 구속(Redemptio acquisita)'이라 한다. 그러나 이 거대한 자산이 하늘의 창고에만 쌓여 있다면, 죄와 허무에 찌든 인간의 현실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적용된 구속(Redemptio applicata)'이다. 소요리문답은 이 적용의 주체를 '그의 성령(His Holy Spirit)'으로 명시한다. 헬라어 '프뉴마(πνεῦμα)' 혹은 히브리어 '루아흐(רוּחַ)'는 '바람' 혹은 '호흡'을 뜻한다. 생명 없는 흙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던 그 창조의 호흡이, 이제는 죽어 있는 인간의 영혼에 그리스도의 구속이라는 생명력을 주입하는 것이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는 '보편적 진리'가 '개별적 사건'으로 번역되는 과정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은 보편 정신이 역사를 통해 자아를 실현한다고 보았으나, 기독교는 성령이라는 인격적 실체가 각 사람의 내면에 들어와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직접 전달한다고 가르친다. 이는 마치 뛰어난 고전 문학이 단순히 도서관 선반에 꽂혀 있는 지식에 머물지 않고, 어떤 독자의 심장을 때려 그의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감동의 순간과 같다. 성령은 그리스도라는 위대한 텍스트를 우리 삶의 컨텍스트(Context)로 번역해내는 최고의 번역가이자 편집자다.
인간의 변화는 결코 정보의 습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지 부조화 이론'이 설명하듯, 인간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바와 행동하는 바가 다를 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죄인인 내가 구원받았다'는 객관적 사실을 지식으로 아는 것과, 그것이 내 정서와 의지의 밑바닥까지 내려와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소요리문답에서 '효과적으로 적용한다(Effectual application)'는 표현은 바로 이 심리적, 실존적 전환을 의미한다. 성령은 인간의 방어기제를 허물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공의가 개인의 양심과 무의식에 깊이 뿌리박게 함으로써 거부할 수 없는 변화를 이끌어낸다.

경제학적으로 이 과정을 설명하자면 성령은 '가장 효율적인 자산 배분가'라 할 수 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무한한 공로라는 자본을 필요한 곳에, 적절한 때에,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배분하신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영적인 지불 능력을 성령께서 대여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이미 지불하신 영수증을 우리 영혼에 확증해 주시는 것이다. 이는 법적으로 '상속의 집행'과 같다. 아버지가 막대한 유산을 남겼어도 집행인이 서류를 처리하여 상속인의 계좌로 입금해주지 않으면 상속인은 여전히 빈곤 속에 머물게 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유언장과 그에 따른 유산을 우리 삶의 실제적 풍요로 전환해 주시는 법적 집행관이시다.
또한 비즈니스 리더십의 측면에서 성령의 사역은 '임플리멘테이션(Implementation, 실행)'의 극치를 보여준다. 수많은 기업이 화려한 전략과 비전을 수립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못해 실패한다. '전략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지 않아서 망한다'는 경영학의 격언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유효하다.
그리스도가 세우신 완벽한 구원의 전략은 성령이라는 최고의 실행 파트너를 통해 우리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열매로 나타난다. 성령은 우리를 강제로 조종하는 독재자가 아니라, 우리 인격 안에서 함께 호흡하며 그리스도의 성품이 우리를 통해 흘러나오도록 돕는 '코치'이자 '서포터'다.
성령의 역할은 분명 '효과적(Effectual)'이어야 한다. 라틴어 '에피카츠(Efficax)'는 단순한 영향력을 넘어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을 뜻한다. 이는 인간의 저항이나 외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성취됨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신의 주권이 만나는 신비로운 지점이다. 성령은 우리의 자유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가장 자유롭고 기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내면의 지향성을 재조정하신다. 억지로 끌려가는 노예의 복종이 아니라, 진리에 매료된 연인의 자발적 응답을 이끌어내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내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동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성령의 적용이 없다면 십자가는 박물관의 유물에 불과하며, 성경은 고대 근동의 신화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영혼의 문을 두드려 그리스도의 사역을 적용하실 때, 우리는 비로소 '구속의 수혜자'를 넘어 '구속의 동참자'가 된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결제가 내 삶의 현장에서 배송 완료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실존적 결핍을 끝내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이 '아는 것(knowing)'과 '사는 것(living)'의 괴리 속에서 고통받는다. 이는 교리(doctrina)와 실천(praxis)의 괴리이기도 하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은 냉랭하고, 결심은 하지만 행동은 따르지 않는 무력감이 우리를 지배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9문은 이 무력감에 대한 영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구원은 우리의 '결단력'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효과적 적용'에 기초한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변화가 더디다고 실망하지 마라. 당신 안에 그리스도의 구속을 적용하기 시작하신 성령은 결코 중도에 포기하시는 법이 없다. 당신의 삶은 이미 하늘의 자산이 입금되기 시작한 '축복의 계좌'다.
허동보 목사 | 수현교회
저서 | 『왕초보 히브리어 펜습자』, 『왕초보 헬라어 펜습자』, 『왕초보 히브리어 성경읽기』, 『고난,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꽃』, 『부와 기독교신앙』, 『그와 함께라면』, 『만남』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