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를 맞아 아버지를 모시고 경기도 양평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정 중 양평 군립미술관에 들렀습니다. 마침 <전쟁과 평화; 삶의 서사>라는 주제로 기획 전시를 개최하고 있었습니다.
전시는 여러 방식으로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파란색과 빨간색의 대비를 이용해 붓의 물감을 뿌리는 기법으로 그린 <리념사냥>. 비밀 서류나 통신장비가 들어갈 법한 가방 안에, 평화로운 가정집의 모형이 만들어져 있는 <집으로 가는 길> 등.
표현방법이나 강조하고픈 메시지는 조금씩 달랐을지라도, 결국은 전쟁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파괴하는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중 <평화누리길>이라는 작품이 가장 마음에 남습니다. DMZ 인근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그렸는데, 이 곳을 ‘관광‘하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철책선 안쪽으로 여기저기 널브러진 일회용 커피잔과 음료수병. 누군가는 반려동물을 산책시키고, 누군가는 꽃 구경을 나온 듯합니다. 분단과 긴장의 상징적인 장소가 아닌, 주말 나들이 장소처럼 보입니다.
작가는 우리가 전쟁의 기억을 얼마나 가볍게 소비하고 있는지, 그래서 그 기억이 얼마나 쉽게 희석되는지를 보여주려 했던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문득, 지난 편지에 이어 오늘도 전쟁 관련 이야기를 하는 건 이웃나라 선거 이슈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건가 싶기도 합니다. 헌법 수정은 생각보다 쉬운 일도 아니고. 그렇게 된다고 해서 꼭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죠. 한편으로는 먹고 살기도 바쁜 일상에 한가한 걱정이나 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곱씹어보니, 지금 우리가 매달리고 있는 건강, 승진과 연봉인상. 재테크, 그리고 자녀의 성장과 같은 꿈은 확고한 전제가 필요합니다. 바로, 내일도 오늘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죽고 죽이는 일이 벌어지면 안된다라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전쟁이 발발하면 모든 게 무의미하고 허무하니 노력하지 말자와 같은 염세주의를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이 전시의 마지막 공간은 ‘평화를 만들어가다’입니다. “평화를 향한 염원이 계속될 때 무너졌던 삶은 조금씩 다시 이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마음이 개인의 바람에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이들과 맞닿을 때, 사회와 공동체가 다시 서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명절 연휴를 평화롭게 보내고 다시 일터로 출근하는 일상. 이 평범한 하루가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은 아닐 테지요. 이를 지키는 일은 어느 누군가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번 관람을 통해 다시금 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