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그렇다면 복이란 무엇일까. 복은 하늘의 힘에 의해 길흉화복의 운수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복 앞에는 항상 행이 따라다닌다. 복이 하늘이 주관하는 일이라면 행은 사람이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행복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연스럽게 오는 즐거움과 인위적으로 만들어가는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은 찾는 것일까 만드는 것일까. 우리는 행복을 찾느라고 인생을 허비하다가 날 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미 있는 복은 발견하면 되고 행은 만들면 된다.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행복을 찾는 것은 타인에 의해 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고 행복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행복은 놀이다. 소꿉놀이, 소풍놀이, 사랑놀이, 우정놀이, 인생놀이처럼 즐거운 놀이다. 일도 놀이처럼 하면 즐겁게 할 수 있는 같은 이치다. 일을 일로 생각하면 지겹고 힘들어서 금방 지친다. 그뿐인가 일에 치여서 살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인생이 된다. 일의 노예가 되어 평생 일만 하다가 죽고 만다. 세상에 일이 즐거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마는 마음을 바꾸면 일도 즐거운 놀이가 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옛말처럼 지겨운 일도 즐거운 일처럼 하면 행복으로 바뀌게 된다. 미국 저가 항공의 원조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허브 켈러허 회장은 일을 놀이처럼 즐겁게 하는 사람이다. 비행기가 출발이 지연되자 고객들이 짜증 낼 틈도 없이 그는 말했다.
“출발 지연으로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보물찾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공항 안에 동그라미를 표시한 1달러짜리 지폐를 숨겨 놓았으니 이 지폐를 찾아오는 고객께는 200달러 상금과 공짜 비행기 표를 드리겠습니다.”
안내방송을 들은 고객들은 불평 대신 즐거운 놀이에 푹 빠져 재밌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행복의 다른 말은 놀이다. 즐거운 놀이를 싫어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놀이가 행복을 만든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삶도 놀이처럼 즐겨라.
“행복이란 나비와 같아 네가 좇아가면 날아가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네게 내려앉는다.”
지난 40여 년간 연구 조사해온 사회과학자들은 유전인자, 성취감 그리고 가치관 이 세 가지 요소를 행복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심리학자와 경제학자들이 연구 조사해본 결과 행복감의 50% 정도가 유전인자에 기인하고 40%는 노력해서 목적을 달성한 성취감에서 오나 이 성취감에서 느끼는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10%에 해당하는 가치관에 행복이 좌우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떤 가치관을 갖는가, 다시 말해 어떤 신앙이나 믿음, 어떤 가족관계, 어떤 사람들과 친교를 맺는가. 그리고 얼마만큼의 열정을 갖고 어떤 직업을 갖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자연파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그의 시 ‘내 가슴 뛰놀다’에서 ‘어린애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듯이 이런 어린애가 우리가 어른 된 다음에도 계속 우리 각자 속에 살아있는 것일까? 1992년에 나온 ‘귀향’ 등 몇 권의 책이 1988년 이후 미국에서만 수백만 권 이상 팔렸고 책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녹음한 녹음테이프도 베스트셀러로 현대판 ‘복음’을 전파해온 존 브래드쇼는 미국 각지로 다니면서 여는 강습회 워크숍에 모여드는 수많은 청중에게 말한다.
“어른들이 느끼는 고립감, 고독감, 절망감 등 모든 불행감이 다 우리가 어린 시절 겪은 애정결핍에서 비롯한 것으로 그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우리 각자 속에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 얘기를 그 한 예로 든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공개하지 않은 비밀을 갖고 있는 만큼 병들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나이 열 살 때 알코올중독자인 아빠는 부인과 세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갔는데 친할아버지는 엄마를 강간 능욕했고 외할머니는 근친상간 당한 후유증에서인지 50년 동안이나 자리에 몸져누워있었다고 한다. 남자를 몹시 혐오하게 된 이 외할머니가 “남자들이란 그들의 자지로 생각한다.”라고 하는 소리를 여섯 살 때 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와 같은 만성 고질병을 낫게 하려면 우리 모두 각자 자신 속에서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어린애’보고 “자, 이제부턴 내가 너를 잘 보살펴 주마”라고 각자 자신 속의 어린애를 가슴에 안고 이 어린애를 그 옛날에 학대한 부모형제로부터 떠나라고, 그들에게 “잘 가” 작별을 고하라고, 그는 청중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면 걸듯 부드러운 음성으로 타이른다.
우리 동양에서는 예부터 ‘성선설’과 ‘성악설’이 있어 온 것처럼 서양에서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성 천성천품과 태어난 후로 얻게 되는 환경과 교육으로 빚어지는 후천적인 변이성 인격 교양 두 가지 가운데 어느 쪽 비중이 더 큰가 하는 이론이 계속 끝없이 진행되고 의견이 분분해 온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그동안 여러 해를 두고 많은 심리교육학자들이 합동으로 연구 조사해 본 끝에 거의 결정적인 공론에 도달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특히 이번의 연구조사 방법과 그 대상이 종전의 것과 다른 특이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적었다고 한다. 그 대상으로 여러 쌍의 동성 쌍 태아를 아주 어려서부터 각기 분리시켜 전혀 다른 환경에서 키워 본 결과 주어진 여건과 받은 교육에 상관없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70~80%가 선천적인 요소라면 그 나머지 20~30%가 후천적인 가능성이란 것이다.
이상과 같은 발표에 나는 회심의 미소 짓고 감탄의 탄성을 발하게 된다. 과학적이고 유식 박식하다는 서양의 학자들이 부산떨며 공연히 ‘말로서 말 많을까 하노라’ 하는 대신 우리나라에서는 저 아득한 옛날 옛적부터 그 어느 촌부 아무나 다 알고 말거리가 못 되는 상식 중의 상식 같은 슬기와 지혜를 배우고 익히러 우리나라로 유학들 올 일이지. 쯧! 쯧! 우리나라 사람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입만 뻥긋하면 진리 중의 진리 같은 말씀만 내뱉지 않는가.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하는가 하면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하고 ‘클 나무는 떡잎 때부터 알아볼 수 있다’고 ‘세 살 적 버릇 여든까지 간다’ 하지 않았나. 인생살이 90년 이상 해오면서 더욱 더 절실히 깨닫고 확인 또 확인해 온 한 가지 불변의 진실과 진리는 사람이고 일이고 간에 ‘추일사가지’라고 한 가지 일로 미루어 모든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이고 또 ‘시작이 반’이라기보다 ‘시작이 전부’라는 것이다. 시켜서 할 사람이면 누가 시키기 전에 본인 스스로 알아서 잘할 사람이고 남이 시켜야 할 때는 이미 너무 늦고 가망 없다는 뜻이다. 노예나 종같이 말이다. ‘덕은 그 자체로서 보답이요 보상이라’ 하듯이 일도 사랑도 삶도 그렇고 하는 만큼 그만큼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