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증금은 묶이고 월 140만원은 따로…씨마른 전세시장에 ‘꼼수 임대료’ 고개 들었다
전세 매물 두 달 새 17% 급감…다주택자 매도 전환 속 ‘옵션 사용료’ 명목 사실상 월세 부과
입주 물량까지 반토막 전망, 전월세 시장 불안 장기화 우려
서울 전세시장이 빠르게 메마르고 있다. 보증금 인상은 5%로 묶인 상황에서 일부 집주인들이 ‘옵션 사용료’라는 이름으로 월 100만~140만원의 추가 금액을 요구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매물은 줄고 가격은 오르는 가운데, 제도의 틈을 파고든 변칙 임대 관행이 세입자를 압박하고 있다.
“전세보증금 9억3000만원에 옵션 사용료로 월 140만원을 내는 임차인을 받겠습니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소유주 A씨는 이 같은 문자를 인근 공인중개사들에게 발송했다. 해당 주택은 임대사업자 등록 매물로, 새 임차인을 받더라도 보증금은 기존 계약의 5% 범위 내에서만 올릴 수 있다. 법적 상한에 막히자 A씨는 보증금 외에 ‘옵션 사용료’라는 명목의 월 부담금을 따로 받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형식은 전세 계약이다. 그러나 실질은 월세를 얹는 구조다. 겉으로는 제도를 지키는 듯하지만, 이면에는 추가 현금 수취가 이뤄지는 셈이다.
서울 임대차 시장에서는 최근 이 같은 변칙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전월세 매물이 급감하면서 가격이 오르자 일부 임대인이 세입자에게 사실상의 ‘꼼수 임대료’를 요구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는 상황에서도 집주인이 1년치 월세 명목으로 1000만~2000만원을 추가로 요구하면 이를 수용하는 세입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집을 구하려 해도 전월세 가격이 더 올라 있어, 차라리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수급 불균형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만9010건으로, 지난 1월 1일(2만3060건) 대비 17.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월세 매물도 2만1364건에서 1만7527건으로 18% 줄었다.
특히 1월 23일 이후 감소 폭이 가팔라졌다. 1월 1일부터 23일까지 22일간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904건 줄었으나, 이후 22일 동안에는 2348건이 추가로 사라졌다. 월세 매물 역시 같은 흐름을 보였다. 반면 매매 매물은 이달 22일까지 1만1507건 증가했다. 다주택자들이 임대 물건을 거둬들이고 매도로 전환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가격 상승세도 뚜렷하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2023년 10월 85.4에서 올해 1월 96.0까지 한 번도 하락하지 않았다. 2022년 1월을 기준(100)으로 한 월세가격지수는 올해 1월 131.8까지 상승했다. 전세와 월세 모두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공급 전망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임대 제외)은 1만8462가구로, 지난해 3만2445가구보다 43% 감소한다. 2027년에는 1만775가구로 더 줄어든다. 2029년에는 5872가구까지 떨어져 1만가구 선이 무너질 전망이다. 입주 물량 감소는 곧 전월세 공급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다른 시각을 내놓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다주택자나 임대사업자가 집을 팔면 전월세 공급도 줄겠지만 그만큼 전월세 수요도 줄어든다”고 밝혔다. 이어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감소하는 구조에서 공급 축소만을 부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또 “매매 시장에 매물이 늘면 집값이 안정되고, 그에 따라 전월세 가격도 안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장의 온도는 다르다. 매물 감소와 가격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세입자들은 선택지를 잃어가고 있다. 제도는 존재하지만 시장은 그 틈을 파고든다. 보증금은 묶여 있고, 월 부담은 늘어난다.
봄 이사철을 앞둔 전세 시장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공급 감소, 매물 잠김, 가격 상승이라는 삼중 압박 속에서 ‘옵션 사용료’라는 이름의 변칙 계약이 어디까지 확산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