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필의 인문학 여행] “桓檀古記는 고구려 역사서 留記로 추정”

고대사 재정립

대고구려 소설을 쓰면서 유럽에 진출한 고구려의 위상에 새삼 놀랐다. 우리의 고대사엔 기록도 없고 언급도 없는 사료들이 헝가리사와 불가리아사에서 그리고 그곳의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헝가리와 불가리아가 우릴 피를 나눈 형제국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있었다. 고구려가 유럽에 진출했다는 유사는 한단고기에 나타난 것과 비슷하였다. 역사는 기록사라고 한다. 환단고기는 사기가 아닌 유사로 역사 인식을 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 없는 고대사를 제시하였다. 그렇다면 관심을 가지고 연구와 고증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는 일본의 식민사관에 의해서 집필되고 중국사에 의해서 필사된 왜곡사를 배우고 있다. 

 

정복제국 고구려는 5세기부터 7세기에 유럽에 진출하여 로마에 채찍을 휘둘린 기마제국이었다. 훈제국과 아바르 제국을 세운 동방의 흉노가 고구려였다고 추정한다. 광개토대왕의 불령지 기병장 고거탑(아틸라)장군이 훈제국을 세웠고 훈국이 망한 후 연개소문의 막리지 기병대장 고영(을지문)장군이 훈을 부활한 아바르 제국을 세웠다. 훈제국은 서로마를 패망시켰고 아바르제국은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사라졌다. 비잔틴과 프랑코 제국은 철저하게 두 제국사를 뭉개버렸다. 나는 훈제국의 아틸라를 판타지 역사소설로 구성하면서 고구려 유럽 진출을 유추해 보았다. (신채호 선생의 지론과 일치)

 

환단고기(桓檀古記)는 고구려 역사서 유기(留記)로 추정한다

 

역사는 인간이 살아온 발자취를 기록한 것이다. 역사를 모르면 인륜사를 모르는 문맹자다. 내가 어떤 존재이며 존재하는 이유가 뭐며 어떤 사회에서 역할자인지, 국가와 나는 어떤 연관으로 살아가는지 그 가치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개인에겐 인생사, 나라엔 국사. 세계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모르는 자는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모르는 맹자이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정확히 아는 것이 없다. 그것은 우리나라 역사지만 우리가 기록하고 정립하고 관리한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일제가 식민사관으로 일관한 한국사는 재정립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고대사는 중국사에서 얻어낸 해석에 불가하다. 정확하게 정립된 기록이 안 된 국사를 배우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삼국사기는 그나마 정립된 기록 역사지만 신라 사관으로 쓰인 역사여서 신빙성이 떨어지고 백제사나 고구려사는 애매하고 가야 사는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대고구려 역사 소설을 쓰면서 느낀 것은 고구려사가 불분명한 왕사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고구려 역사는 소수림왕 때 유기(留記)란 별책 105권으로 쓰여 있었고 영양왕 때 신집(新集) 5권으로 요약되어 있었다. 그런데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다. 백제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방대한 고구려사가 기록된 유기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역사는 권력자의 기록이라고 신라가 없애버렸고 당나라가 없앴고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없애버렸다. 그나마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구당서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황당한 유사라고 칭하는 환단고기에서 고구려사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필자는 환단고기가 고구려 유기(留記)로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 역사서 유기의 일부라는 것을 감히 유추해 보는 것이다. 기록된 정사는 아니지만, 유사로 전해지는 한단고기는 삼국사기보다 많은 고구려 역사를 전해 주었다. 한단고기는 우리 고대사의 유사 기록으로 생각하기에 소중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구려는 동방의 맹주로 세계로 나갔던 위대한 정복 제국이었다. 그런데 기록이 없다고 고구려란 제국이 중국사에 비추어 축소된 변방국에 불가했다. 세계사적인 영향력을 가진 고구려가 왜곡 축소도고 중국사에서 기웃거려 유추해 보는 궁색함에 자존심 상하였다. 그런데 고조선과 고구려사는 환단고기가 세계사적으로 기록하고 있음은 다행이었다. 더불어 사라져 버린 고구려사를 환단고기에서 유추하여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흉노(匈奴)의 고조선과 고구려는 어떤 나라인가

 

중국인은 북방의 대 유목제국을 모두 흉노라고 칭한다. 흉노는 국가도 문화도 없는 미개한 야만 민족이라고 기록하여 불렀다. 그러나 흉노는 미개하지 않았고 중국보다 대제국을 거느린 민족이며 제국이었다. 그 중앙에 고조선 선비 흉노가 있었다. 한나라는 황하의 오르도스에서 만리장성을 쌓을 정도로 북방의 흉노에게 항상 당했다. 그런데 대제국 흉노는 돌궐과 말갈, 유연이란 나라로 크게 존재하다가 한 무제로부터 망하고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아랄과 알타이로 민족이동을 하였다. 그때 선비 흉노인 고조선 아발족도 망하여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고구려 장수왕은 한나라를 지배하고 오로도스에서 유연과 같이 세력을 펴다가 유랄 알타이 진출의 발판을 만들었다. 고구려 기병대가 우랄 알타이 진출의 기원을 이루었는데 바로 스키타이 기마민족이 바로 고구려 기병대였다. 중국이 두려워하던 북방의 흉노는 돌궐족(몽고)과 말갈족(유연), 거란족(몽고) 그리고 아발족(고조선 선비)이었다. 서방으로 간 돌궐은 튀르키예 민족으로 말갈은 헝가리 마가르 훈족으로 거란은 이란의 사산조 민족으로 아발족은 고조선 고구려로 세계사의 중추 역할을 하였다.

 

우랄 알타이의 스키타이(Scythians)전사는 고구려의 후예였다

 

우랄 알타이로 건너간 유목민족인 흉노의 아바르족(고조선)은 유럽을 제패하는 민족으로 성장하였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불령지 기병대가 만든 아틸라의 훈제국과 훈제국 멸망 후 등장한 아바르국은 연개소문의 막리지 기병대가 만든 불가리아 제국이다. 연개소문의 막리지 기병대를 이끈 장수는 고영(을지문)이었다. 고구려 대장군 연개소문은 을지문 장군을 다뉴브강으로 보내 아바로 국을 세우고 발칸의 맹주가 되어 비잔틴 국을 멸망시켰다. 

 

고구려 광개토대왕 후손이 세운 훈제국(아틸라)이 서로마를 멸망시켰고 연개소문의 후손이 세운 아바르제국의 장수 을지문은 페르시아 사산과 연합하여 비잔틴국(동로마)을 멸망시켰다. 5세기부터 8세기에 이르러 고구려가 세계사를 뒤흔든 대정복 제국임을 확신할 연구가 받침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

이메일 :danmoon@hanmail.net

 

작성 2026.03.13 11:46 수정 2026.03.1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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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