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국부 인디라 간디는 금욕주의자이다. 그런데 간디의 조상들은 어떤 의도로 성행위를 예술 조각으로 승화시켜 힌두교 사원에 탑으로 켜켜이 쌓아 놓았던 것인가.
아이러니하게도 간디가 살아생전에 그렇게 부끄러워했던 카주라호의 에로틱 사원을 보기 위해 아그라에서 카주라호 가는 열차에 몸을 싣는다.
소가 어슬렁거리는 아그라 역에서 카주라호로 가는 열차는 다행스럽게 11시 정시에 출발한다. 저녁 7시에 카주라호 도착 예정이지만 워낙 연착이 예사여서 아무도 도착 시간을 믿는 사람이 없다.
우리가 탄 기차 객실은 양쪽에 침대가 3개씩 있는 3AC 슬리핑 칸이다. 2AC와 함께 1등 칸에 해당되는데 에어컨이 나오고 비교적 공간이 넓어 여유로운 편이다. 현지인들이 많이 타는 3등 칸 슬리퍼와 좌석 번호가 아예 없는 세컨드 클래스는 가격이 저렴하다보니 그야말로 인산인해인데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다.
기차 계단 난간을 잡고 철길 옆 풍경을 보는 것이 기차 여행의 낭만이라 객실 밖으로 나갔더니 우리 객실의 침구 관리와 청소를 맡은 젊은 직원이 객실 바깥에 있는 간이용 침대에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침대에 놓인 담요와 배게는 너무 지저분해서 아예 접어놓는다. 마침 창가 쪽 침대에 앉아 있는 인텔리 분위기의 인도 모녀와 대화를 나누는데 딸은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학생이란다.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지루한 시간을 달래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모녀가 쟌시에서 내리고 만다. 이때부터 다시 기차 바깥의 시골 풍경에 매달린다.
정말 희한하게도 딱 8시간 걸려 저녁 7시에 카주라호 역에 도착한다. 카주라호 역은 옛날 우리 시골 역 모습과 흡사하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는 어두운 도로에는 사람 대신 소떼가 가득하다.
오전 여섯 시, 하늘은 아직까지 어둠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지만 여행자들은 느린 발걸음으로 카주라호 새벽을 연다.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서부 사원군이 있다. 1,000여 년 전 최고의 번영을 누렸던 찬델라 왕조에 의해 건설된 중세 인도 예술의 보고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85개 사원 중 현재는 22개의 사원만 남아있다.
힌두교의 신은 크게 창조의 신 브라만(Generate), 유지 보호의 신 비슈누(Observe), 파괴의 신 시바(Destroy)으로 나뉜다. 이 신들의 영어 첫 글자를 모으면 희한하게도 GOD(신)가 된다. 사원 외부 벽에는 이러한 힌두 신들의 모습과 함께 인간과 동물들의 다양하고 적나라한 모습이 새겨져있다.
서부 사원군에 접어들면 마음의 준비부터 단단히 해야 한다. 락슈마나 사원, 칸다리아 마하데바 사원, 치트라굽타 사원의 벽면을 뒤덮고 있는 남녀교합상인 미투나 부조 때문이다. 미투나는 사랑하는 한 쌍의 남녀 또는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금기시하는 성행위 조각이긴 하나, 섬세함과 작품성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락슈마나 사원은 카주라호 서부 사원들 중에서 건물이 완전히 잘 보존되어 있는 사원이다. 이 지방 최초의 힌두교 사원인데 상단부에는 다양한 미투나가, 기단부는 전쟁에 참가하는 코끼리 무리가, 사원 안쪽에는 비슈누 신이 모셔져 있다.
이 에로틱 사원의 부조물 중 허리를 180도로 꺾은 여성과 그 뒤에 서 있는 남성의 미투나 부조가 시선을 끄는데 바로 옆에서 코끼리가 그걸 보고 싱긋 웃고 있다. 이렇게 가뿐하게 발을 들고 몸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요가의 유연함이 바탕이기 때문이다.
인도 역사에서 코끼리가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인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힌두 신 중 하나가 얼굴은 코끼리인데 몸은 사람인 코끼리 신 가네샤다. 특히 흰 코끼리는 힌두교나 불교에서 신령스런 동물로 대접받는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과 영국군과의 전쟁 때 이들과 싸운 것도 인도 코끼리부대다.
칸다리아 마하데바 사원은 카주라호 사원들 중 가장 거대하고 예술적으로 건축학적으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 받고 있는 사원이다. 가장 늦게 지어진 사원으로 시바에게 바쳐진 사원이다. 칸다리야는 동굴, 마하데바는 위대한 신을 나타내는데, 시바가 카일라스 산의 동굴에서 얻은 깨달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탑 전체를 힌두의 신들이 남녀가 서로 얽혀 애욕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조각상 미투나에는 탄트리즘의 종교사상이 내포되어 있어 카마수트라의 성애 기교와 그 자태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힌두교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독립된 상태는 불완전성으로 인식하는데, 그 불완전성을 해소하기 위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영원한 진리로 인식한다.
서부 사원군의 미투나 부조는 남녀상열지사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벽면을 가득 메운 부조를 보면 나체는 기본이고, 남녀 간 정상체위는 찾아보기도 힘들다.
치트라굽타 사원은 태양의 신 수리아를 모신 곳이다. 사원 입구를 기웃거리니 직원으로 보이는 중년의 인도 남성이 손짓으로 오라고 한다.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향내가 진동하는 안쪽 중앙에 원통 모양의 커다란 대리석이 하나 있다. 그 남성은 다짜고짜 돌에 머리를 조아리라고 하더니 주위를 돌라고 한다. 그리고는 시주를 하라고 하면서 1달러를 요구한다. 사원을 나와 연세대에서 유학한 가이드 라지브 싱와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배를 잡고 웃는다. 머리를 조아린 그 돌은 힌두교가 숭상하는 시바신의 링가, 그러니까 성기인데 시바 신 성기에 머리를 조아린 대가로 1달러를 뜯긴 것이다.
시바신을 모신 비슈바나타 사원은 서부 사원군의 오른쪽에 있다. 작은 탑들이 카일라스 산을 상징하는 시카라의 정점을 향해 상승하는 형태로 건축된 사원이다. 이 사원도 예외 없이 미투나를 곳곳에서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발견하게 된다. 지혜와 행운의 코끼리 신 가네사 부조물도 눈에 띈다. 방금 참배를 마친 인도 처자가 시바신에게 바친 성수를 바닥에 뿌리고 있다.
서부 사원군에서 3~4km 떨어져 있는 동부 사원은 넓게 퍼져있는 조그만 힌두 사원과 한곳에 몰려있는 3개의 자이나교 사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 파르스바나트 사원이 규모가 가장 크다. 불교처럼 스스로 고행과 금욕주의, 수도 생활을 통해 진리를 깨우치는 종교인데 소유를 버려야 진정한 자유를 구현한다하여 주로 나체로 수행한다. 아이보리색의 자이나교 사원에는 모녀로 보이는 흰옷을 입은 여인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파르스바나트 사원에는 목이 없거나 신체가 훼손된 부조물이 많은데 이교도를 용납하지 않는 정복자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손상되었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아쉬움이 크다.
현대에 와서 인간 본성의 쾌락과 정신적인 행복의 표본으로 카주라호 성애 사원을 에로틱 문화유산의 최고 진수로 꼽는다고 한다.
도대체 성이란 무엇인가? 몸에 들끓고 있는 욕망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것을 극복하여 해탈로 가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힌두교적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서로에 대한 사랑이 확인되는 성, 생명을 잉태하는 성은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카주라호 사원을 나오면서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작고한 마광수 교수다. 그는 평소 ‘성적 욕구를 감추지 말고, 당당히 인정하라.’고 외쳤던 시대를 앞서간 자유주의자였다.
카주라호 사원의 미투나를 본 사람이라면 과연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