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을 졸업하고 수의사가 되었을 때, 나는 내 길이 정해졌다고 믿었다. 이 직업 하나면 평생 문제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마흔 즈음 내 안에서 무언가 자꾸 흔들렸다. 진료실 안에만 머무는 내가 답답하게 느껴졌고, 무언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2022년 11월, 아주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난생처음 쓰는 글이었다. 뭐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매일 썼지만 제대로 쓰고 있는 건지, 이렇게 계속 쓰면 되는 건지 확신이 없었다. 주제도 좋게 표현하면 다양한 것을 다뤘고, 좀 더 사실대로 말하면 줏대 없이 이것 저것 다뤘다. 남들의 글을 보며 기죽기도 하고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은 날도 허다했다. 말 그대로 헤맸다.
그렇게 삽질처럼 쌓인 시간이 결국 네 권의 책이 되었고, 작가와 강연가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되었다. 지금 이 칼럼이란 꽃도 그 헤맴 덕분에 피어난 것이다. 그때 그 방황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
우리는 흔히 방황을 부끄러워한다. "남들은 다 제 갈 길 잘 가는데 나만 이러고 있다"라고 자책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노력하지 않는 사람, 치열하지 않은 사람은 애초에 방황할 일도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헤맬 일조차 없다. 방황한다는 것은 지금 애쓰고 있다는 증거이고, 더 나은 길을 찾으려 몸부림치고 있다는 신호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돌아보면 방황의 시간이 가장 결정적이었다고 말한다. 지금 잘나가는 사람 중에 헤맨 적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도 다 헤맸다. 다만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 방황하고 있다면 스스로를 탓하지 말자. "헤맨 만큼 내 땅"이라는 말이 있다. 돌아간 길, 잘못 들어선 길, 다시 되돌아 나온 길. 그 모든 헤맴이 결국 나의 영토가 된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나만의 경험 재산이 된다.
헤매는 시간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잘못 든 길에서 얻은 감각, 돌아오며 배운 판단력, 버티는 동안 단단해진 마음. 이것들이 쌓여 나중에 진짜 내 길 위에서 빛을 발한다. 방황은 낭비가 아니라 축적이다.
류시화 작가의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인생은 길을 보여 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길을 잃어야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이라는 말처럼,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가면 그 뒤에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헤매며 찍고 있는 그 발자국 하나하나가 사실은 길이 되어 가는 중이다. 당장은 길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찍는 이 발자국이 나중에 돌아보면 분명한 길이 되어 있을 테니.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독저팅, 필북, 필레터, 필라이프 코칭 운영
부산 시청 특강 외 다수 출강
이메일 : tothemoon_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