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칼럼] 임진왜란 전적지 거제도 오비질포(吾非叱浦) 탐사

장문포해전 당시 전적지, 거제시 연초면 오비리

 

1594년 10월 6일(이하 음력) 장문포해전 당시 거제도 오비질포(吾非叱浦)에서 경상우수군 소속 사후장 원사웅, 조준표 등이 적선 2척을 불태워 없애는 전과를 올렸다. 난중일기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선조실록 56권, 선조 27년(1594년) 10월 8일 기사에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순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차자표기할 때 '질(叱)'의 음가는 '사이시옷' 또는 받침 'ㅅ'이 된다. 그래서 '오비질포(吾非叱浦)'는 '오빗개'를 차자표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 오빗개는 현재 지명으로 거제시 연초면 오비리이다.

 

 

2026년 4월 오빗개 현장 답사를 했다. 한적한 마을에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HJ중공업 등이 들어서 있었다. 바닷가에는 오비부인회에서 '바지락 채취 금지'라는 안내판을 설치해 놓고 있어 여기가 오빗개임을 알 수 있었다. 

 

거제시 연초면 오비리가 선조실록에 나오는 오비질포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사료는 신증동국여지승람, 호구총수, 1910년대 지도 등이 있으며 필자가 이미 이런 사료를 바탕으로 그 위치를 고증한 바 있다.

 

장문포해전은 임진왜란 강화협상 중이던 1594년 9월 28일부터 10월 7일까지 거제도 장문포(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일대에서 벌어졌던 해전이다. 삼도수군 연합함대와 곽재우, 김덕령, 한명련, 주몽룡 등 의병부대 육군이 합동작전을 펼쳐 장문포왜성에 웅거하고 있던 왜군을 공격한 전투였다.

 

이 전투 기간 중 조선수군은 장문포 포구에서 적선 2척을 격파했다. 오비질포에서도 적선 2척을 격파하고 왜군 1명을 생포했으며, 칠천량에서는 매복하고 있던 곤양군수 이광악이 영등포 왜군 1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장문포왜성에서 수성전을 펼치면서 완강하게 저항하는 왜적을 더 이상 공격할 수 없어 10월 7일 곽재우 등 육군장들은 육지로 돌아가고 10월 8일 삼도수군이 한산도로 회군하면서 장문포해전은 끝이 났다.

 

*필자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합니다

 

 

[이봉수 논설주간]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https://myisoonsinxsz.zaemit.com/

 

작성 2026.04.21 11:38 수정 2026.04.21 12:16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봉수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