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역사] 136. “빠른 말이 이기는 경마가 아니었다… 류큐 경마의 반전”

류큐 경마 ‘음마하라시(ンマハラシー)’: 속도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겨룬 말의 예술

왕실의 오락에서 민중 축제, 그리고 현대 부활까지

속도보다 자세가 중요했다… 오키나와 전통 경마의 비밀

류큐(琉球) 왕국의 경마는 일반적인 경마와 달랐다. 서양이나 일본 본토의 경마가 결승선을 향한 속도 경쟁이었다면, 류큐의 경마는 말의 움직임과 기수의 자세, 그리고 둘 사이의 조화를 평가하는 예술적 경기였다. 

 

오키나와 방언으로 ‘음마하라시(ンマハラシー)’라 불린 이 전통 경마는, 누가 더 빠른가보다 누가 더 아름답게 달리는가를 겨루는 문화였다.

 

 말과 기수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겨룬 류큐(琉球)의 전통 경마 [이미지=AI 생성]

 

음마하라시의 핵심은 말의 걸음걸이였다. 출전하는 말들은 일반적인 달리기 방식이 아니라 측대보(側対歩), 류큐어로 우미아시라 불리는 특수한 보법을 훈련받았다. 오른쪽 앞뒷다리가 함께 나가고, 이어 왼쪽 앞뒷다리가 함께 나가는 방식이다. 

 

이 보법은 말의 등이 크게 흔들리지 않게 해 기수가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 결국 심사의 핵심은 말의 리듬, 기수의 흔들림 없는 자세, 그리고 전체적인 우아함이었다.

 

류큐 경마의 아름다움은 말의 움직임에만 있지 않았다. 말의 갈기와 꼬리는 정성스럽게 땋았고, 화려한 끈과 방울로 장식했다. 

 

기수 역시 빙가타(紅型) 의상이나 고급 직물로 만든 정장을 입었다. 말발굽 소리조차 일정한 박자를 이루어야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음마하라시는 말, 사람, 의상, 장식, 리듬이 결합된 종합 퍼포먼스였다.

 

17세기에는 왕실 직할의 경마장이 마련될 정도로 왕부의 후원을 받았다. 국왕과 귀족들은 뛰어난 측대보를 구사하는 말을 키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 문화는 지배층의 오락에만 머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민중 사회로 퍼져나갔고, 농한기나 풍년제 같은 마을 행사에서 음마하라시가 열렸다. 마을을 대표하는 말과 기수가 출전했고, 사람들은 피리와 삼선(三線) 소리 속에서 경기를 즐겼다.

 

음마하라시는 류큐의 공연 예술에도 스며들었다. 18세기에 탄생한 전통 가무극 구미오도리(組踊) 작품 속에도 경마를 소재로 하거나 경마 장면이 등장했다. 이는 음마하라시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류큐 문화의 중요한 예술적 모티프였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전통은 근현대의 격변 속에서 단절되었다. 류큐 처분 이후에도 민간에서 한동안 이어졌지만, 자동차의 보급과 말 문화의 쇠퇴, 그리고 1945년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말과 도구, 문화적 기억이 함께 사라지며 음마하라시는 오랫동안 잊힌 전통이 되었다.

 

그럼에도 최근 전통문화 복원 움직임 속에서 음마하라시는 다시 주목받았다. 류큐 재래마 보존과 측대보 훈련이 이루어졌고, 2013년 약 70년 만에 대회가 부활했다. 오늘날 음마하라시는 류큐 왕국 시대의 우아한 미학을 다시 만나는 문화 행사로 이어지고 있다.


 

류큐 경마 음마하라시는 속도보다 아름다움을 중시한 독창적인 말 문화였다. 측대보(側対歩), 화려한 장식, 기수의 자세, 말과 인간의 조화가 승부의 기준이었다. 

 

왕실의 후원을 받은 고급 문화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마을 축제와 공연 예술 속으로 퍼졌고, 전쟁과 단절을 넘어 현대에 다시 부활했다. 음마하라시는 류큐 사람들이 경쟁을 예술로 바꾸어낸 아름다운 무형문화유산이다.

작성 2026.04.28 08:02 수정 2026.04.2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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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