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학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신곡을 남긴 단테 알리기에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르 소설 ‘단테, 러브크래프트를 만나다’가 출간됐다.
저자는 『호러영화사』와 『장르영화 대사전』을 집필한 김정곤. 고전 문학과 현대 장르 문학의 접점을 탐색해온 연구자이자 작가다.
작품은 1300년 성금요일 밤에서 출발한다. 단테는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정신을 차린다. 이후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로 지옥과 연옥을 지나 천국에 이르는 여정을 겪는다. 이는 원작 『신곡』의 구조를 따른다. 그러나 소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단테는 다시 지옥에서 깨어난다.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순간 또 다른 세계로 밀려든다.
이번 여정에서 단테를 이끄는 인물은 압둘 알하즈레드다. H. P.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존재로, 코즈믹 호러 세계관의 핵심 인물이다. 이들은 ‘드림랜드’라 불리는 공간으로 향한다. 여기에 기이한 과학자 허버트 웨스트까지 합류한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의 인물들이 하나의 서사 안에서 충돌한다.
드림랜드는 이 작품의 중심 무대다. 달빛만이 대지를 비추는 세계다. 저자는 그리스 신화의 밤의 여신과 죽음의 신들을 끌어와 이 공간의 성격을 설명한다. 동시에 호주 아란다 부족의 ‘꿈의 시간’ 개념을 접목한다. 이곳은 재생과 소멸이 동시에 작동하는 영역이다.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는다. 인간의 인식이 흔들리는 지점이다.
작품은 이중 구조를 기반으로 전개된다. 신화와 자연과학.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신학. 인간은 초월을 갈망한다. 동시에 이성적 설명을 요구한다. 이 긴장은 이야기 전반을 지배한다. 저자는 단테라는 상징적 인물을 통해 이 모순을 체험하게 만든다.
코즈믹 호러 장르의 특성도 적극 반영됐다. 괴물은 단순한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문학과 영화의 고전에서 축적된 이미지들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이는 독자의 익숙한 감각을 자극하면서도 낯선 불안을 형성한다. 장르적 쾌감과 철학적 질문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다.
작품의 핵심 개념은 ‘맑고도 흐린’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된다.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이는 인간 삶의 본질에 대한 은유다. 이해와 불가해가 공존하는 현실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의미를 찾는다. 저자는 이 과정을 신화적 상상력과 과학적 사고 사이에서 풀어낸다.
‘단테, 러브크래프트를 만나다’는 단순한 장르 소설을 넘어 고전과 현대 상상력의 결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책과 이야기의 힘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동시에 독자에게 묻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