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자란다"… 30년차 원장이 쓴 유치원 풍경

『우리 아이 유치원에 다녀요』 / 배미경 지음 / 어깨 위 망원경 / 248쪽 / 1만 7800원


배미경 원장은 30년째 유치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수천 명의 아이가 그의 유치원 문을 열고  들어왔고, 또 졸업했다. 유아교육학 박사이자 현재 삼성유치원 원장, 수원여대 유아교육과 겸임교수로 강단에도 서고 있는 그가 이번에 낸 첫 에세이 『우리 아이 유치원에 다녀요』(어깨 위 망원경)는 그 시간을 사계절 단위로 끊어 정리한 기록이다.


이 책에는 발달 단계표도 없고, “이렇게 하세요” 식의 지침도 없다. 이 책은 부모라면 누구나 마음이 울렸을 법한 작은 장면들로 가득하다. 엄마 다리를 붙잡고 울던 아이가 어느 아침 먼저 "바이바이"하고 작별인사를 건네는 날, 화장실을 혼자 다녀와 "나 혼자 했어요"라고 외치는 순간, 친구와 싸우고 나서 어색하게 "미안해"를 꺼내는 오후 같은 것들. 배 원장은 이런 사소한 장면들이야말로 아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결정적 시간이라고 본다.


좋은 유치원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도 다소 의외다. 시설도 프로그램도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가 행복하게 웃는 곳, 부모가 안심하며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 그리고 교사가 보람을 느끼며 일하는 곳"이 좋은 유치원이라고 그는 적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은 결국 이 한 줄로 수렴한다. 


바로 “아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자란다”는 것. 졸업한 뒤 초등학생, 중학생, 대학생이 되어 다시 유치원을 찾아오는 아이들이 기억하는 것도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자신을 믿어주고 기다려준 선생님의 손길"이었다는 대목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근거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봄에는 낯선 교실에서 첫 친구를 사귀고, 여름에는 물놀이와 소풍에서 용기를 배운다. 가을의 운동회와 텃밭 활동을 지나고 나면 겨울의 발표회와 크리스마스, 그리고 졸업이 기다린다. 한 해가 지나는 동안 울음으로 시작했던 등원은 인사와 웃음으로 바뀌어 있다. 저자는 이 변화를 굳이 부풀리지 않고, 한 해의 흐름을 따라가며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아이만 다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첫 등원 날 교실 문 앞에서 차마 발을 떼지 못하는 부모, 담장 너머를 흘끔거리는 아빠, 아이를 들여보내고 차 안에서 우는 엄마들의 모습이 함께 들어 있다. 저자는 "짧고 확실한 작별 인사가 아이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조언하면서도, 그것이 부모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모른 척하지 않는다. 아이의 울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부모의 용기 있는 한 걸음이 아이의 독립적인 백 걸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시선이다.


비교하지 말 것,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칭찬할 것, 놀이를 배움의 반대말로 여기지 말 것. 책에 담긴 조언들은 새로울 게 없을 수도 있다. 다만 이론서가 아니라 수십 년간 쌓인 현장의 언어로 쓰였다는 점이 다르다. "놀이는 공부의 반대말이 아니라 최초의 배움"이라거나,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앞에서 손목을 쥐고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곁에서 나란히 보폭을 맞추며 걷는 일"이라는 문장이 그렇다.


첫 등원을 앞둔 부모, 혹은 매일 아침 닫힌 유치원 문을 보며 "잘 지내고 있을까" 묻게 되는 부모라면 한 번쯤 들춰볼 만하다.












작성 2026.04.28 14:41 수정 2026.04.28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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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