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韓非子)는 일찍이 경고했습니다. “법과 술수(法術)를 버리고 마음 가는 대로 다스린다면, 요임금 같은 성군이라도 나라 하나 바로잡지 못 한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자 해중(奚仲)이라도 컴퍼스와 자를 버리면 바퀴 하나 제대로 깎지 못하며, 名匠(명장)인 王爾(왕이)조차 치수를 무시하면 명중률이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 준엄한 고전의 가르침을 대한민국 사법부에 들이대 봅니다. 최근 김건희 항소심 판결은 그야말로 ‘규구(規矩, 컴퍼스와 자)’를 내던지고 ‘임의대로(妄意度)’ 재단한 기형적인 결과물입니다.
1. ‘명백한 증거’라는 자를 부러뜨린 판결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로부터 무상 여론조사를 제공받았다는 의혹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의 공정성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증거가 차고 넘치고 대가성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1심의 해괴한 논리를 답습하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는 기술자가 자를 버리고 눈대중으로 길이를 잰 격입니다. 법리라는 ‘치수’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이를 무시한 채, 여전히 건재한 조희대 사법부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며 ‘마음대로’ 판단했으니,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설 리 있겠습니까.
2. ‘거래’와 ‘타협’이 된 사법 정의
재판부는 여론조사 무상 제공 혐의에 면죄부를 준 것이 못내 찔렸던 모양입니다. 주가조작과 샤넬백 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며 징역 4년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자위할 수 있습니까?
국민이 보기엔 이것은 정의의 실현이 아니라 교묘한 ‘형량 거래’에 불과합니다. 몸통은 살려주고 꼬리만 자르는 식의 판결, 혹은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다른 혐의를 희생양 삼는 식의 기술적 판결은 사법부를 ‘정의의 보루’가 아닌 ‘정치적 계산기’로 전락시켰습니다.
3. 언론의 직무유기와 시민의 분노
더 가관인 것은 언론의 태도입니다. 판결의 논리적 모순과 법치주의의 훼손을 파고 들어야 할 언론들이, 그저 “1심보다 형량이 높아졌다”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내기에 바쁩니다. 본질을 외면한 채 껍데기만 보도하는 모습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기극의 공범이나 다름없습니다.
시민들은 경악합니다. 그리고 분노합니다. 법치국가에서 법(法)이 기준이 되지 못하고 사법부 수장의 의중과 그 하수인들의 ‘정치적 감각’이 기준이 되는 순간, 국가라는 수레는 바퀴가 빠진 채 굴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중급 정도의 군주라도 법을 지키고, 서툰 목수라도 자를 지키면 만에 하나도 실수함이 없다.”
한비자의 이 말은 오늘날 우리 사법부가 뼈아프게 새겨야 할 대목입니다. 제멋대로 법리를 비틀어 ‘기술’을 부리려 하지 말고, 제발 주어진 법과 원칙이라는 ‘규구’와 ‘치수’만이라도 제대로 지키십시오. 국민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판결문이 아니라, 누가 보아도 납득할 수 있는 ‘상식의 치수’입니다. 자를 버린 목수는 집을 지을 수 없고, 법을 버린 판사는 나라를 망칩니다. 이번 판결은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 ‘원칙을 잃은 기술자들의 잔치’로 기록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