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하루] 서시

허형만

 

서시

 

 

나를 사랑하는 시여 

먼 훗날에도 늙은 나를 사랑해다오 

 

먼 훗날에도 오늘처럼 

바람의 속삭임을 듣기 위해 숲으로 갈 것이다 

 

숲으로 가서 늘 하던 대로 

바람이 불러주는 말씀을 받아 쓸 것이다 

 

써야 할 때 쓰지 않으면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수리부엉이처럼 늘 깨어 

열심히 받아 쓸 수밖에 없느니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이기 때문이요 

나에겐 아직도 대표작이 없기 때문이다  

 

먼 훗날 너무 늙은 탓으로

만약에 바람의 속삭임을 듣지 못 한다면 

 

숲속의 햇살과 공기와 

경이로움이 참으로 무슨 소용일까 

 

그러니 나를 사랑하는 시여 

먼 훗날에도 늙은 나를 사랑해다오  

 

 

[허형만]  

1973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영혼의 눈』 『황홀』 『바람칼』 『만났다』 등 20권. 

한국시인협회상, 영랑시문학상, 편운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 

현재 국립목포대학교 명예교수. 국제펜한국본부 심의위원장.

작성 2026.04.29 09:25 수정 2026.04.2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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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