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소설가 강영숙의 글을 읽었다. 설 연휴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뜨개질 바구니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바구니 안에는 뜨다 만 목도리와 컵받침처럼 보이는 작은 조각들이 들어 있었다. 글쓴이는 한동안 그 바구니를 바라보았다고 했다. 손으로 뜬 물건에는 시간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그 글을 읽다 문득 아내가 뜨개질하던 때가 떠올랐다.
아내는 틈만 나면 뜨개질을 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잠깐 쉬다가도 어느새 실타래와 바늘이 손에 들려 있었다. ‘잠자리 눈’ 같은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아이고 고개야, 아이고 허리야” 하면서, 눈을 비비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 괜히 답답해졌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지 왜 저 고생을 할까 싶었다. 몇 번이나 말려 보았지만 아내는 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바늘을 놓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나름의 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뜨개질을 그렇게 잘하는 줄은 나중에 알았다. 다문화센터에서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집에서는 그저 취미로 하는 줄만 알았는데 사람들에게 코 만드는 법을 설명하는 걸 보고 조금 놀랐다. 실을 잡는 손놀림이 익숙했고, 말투도 차분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목도리나 장갑을 만드는 손재주 정도로 생각했지만, 나중에 보니 뜨개질의 의미가 훨씬 깊었다. 같은 손동작을 반복하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잡념이 가라앉으며, 명상과 비슷한 효과도 생긴다고 한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일이 뇌를 자극해 기억력에도 도움을 준다. 작은 실타래 하나가 몸과 마음을 함께 움직이는 셈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도 있다. 프랑스혁명 때 여성들만의 정치 모임이 있었는데 그 여성들이 뜨개질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단두대 옆에서 처형을 지켜보며 뜨개질을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뜨개질하는 여성들’이라고 불렀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일정한 리듬의 손동작이 충격적인 기억을 마음속 깊이 고착되는 것을 막아 준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아내가 뜨개질을 하던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저 실타래였는데 바늘을 몇 번 오가면 조금씩 모양이 생겼다. 코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새 목도리나 모자가 되었다. 작은 반복이 결국 하나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쩌면 뜨개질은 시간을 엮는 일인지도 모른다. 코 하나는 금세 지나가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목도리 하나가 된다. 사람의 하루도 그렇다. 별것 아닌 하루들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의 시간이 된다.
요즘은 아내가 뜨개질을 거의 하지 않는다. 눈도 예전 같지 않고 오래 앉아 있으면 금세 피곤해하기 때문이다. 서랍을 정리하다 보면 예전에 쓰던 뜨개바늘이나 남은 실타래가 나오기도 한다. 지금은 뜨개질이 멈추었지만 문득 밤늦게까지 뜨개질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문용대]
한국수필 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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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날개 작은 새도 높이 날 수 있다’, ‘영원을 향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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