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漢儒學] 스스로 부른 재앙(自作孽)은 반드시 시간을 건너 돌아온다.

四書三經(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書經)의 태갑 편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 준엄한 경고를 던집니다. 

 

"천작얼 유가위, 자작얼 불가활(天作孽 猶可違, 自作孽 不可活)."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길이 있으나, 스스로 만든 재앙은 결코 살아날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문장은 수천 년을 지나 오늘날, 권력의 단맛에 취해 겸손을 잃고 날뛰는 자들을 비추는 매서운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독선이라는 흉기가 된 권력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세계 최 강대국인 미국의 정치적 파행과 사회적 갈등은 이 '자작얼'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지도자라는 자들이 겸손함은커녕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반사회적 행태를 보이고, 그 주변 세력들은 맹목적인 추종으로 그 오만을 부추깁니다. 대한민국 야당인 국힘당의 정치적 난맥상부터 국제무대의 트럼프나 네탄야후 같은 인물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공적 책무를 개인의 화풀이나 욕망의 수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비극은 이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가 본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지도자의 오판과 독선은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전쟁과 빈곤이라는 이름의 재앙이 되어 아무 죄 없는 선량한 시민들의 목을 조릅니다. 왜 하늘은 이토록 잔인한 불공정을 방치하는가? 왜 악귀 같은 자들이 활개 칠 때 무고한 이들이 먼저 스러져야 하는가? 우리는 절망하며 묻습니다. 

 

"도대체 신은 어디에 있는가?"

 

'시간'이라는 가장 엄중한 심판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늘의 심판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독했던 코로나19 팬데믹도 끝내 시간의 흐름 앞에 무릎을 꿇었듯, 인간이 휘두르는 권세와 광기 역시 시간이라는 거대한 맷돌 아래에서는 한 줌의 가루가 될 뿐입니다.

 

동양 철학에서 하늘(天)은 조급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만 지극히 공정하게 흐를 뿐입니다. 독재 정권의 끝이 언제나 비참했듯, 스스로 재앙을 쌓는 자들은 이미 그 결말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 당장 악인이 번성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늘이 그들을 잊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쌓은 업보의 그릇이 가득 차기를 기다리는 시간의 인내일 뿐입니다.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법

 

물론 그 심판의 시간이 오기까지 무고한 이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뼈아픕니다. 하지만 어둠이 가장 짙을 때 새벽이 멀지 않았음을 알듯, 우리는 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 합니다. 자작얼(自作孽)을 저지르는 자들은 스스로 멸망의 길을 닦고 있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은 그 재앙의 파편 속에서도 정의의 씨앗을 지켜내야 합니다.

 

악이 만든 재앙이 세상을 뒤덮을 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사필귀정'의 논리입니다. 하늘은 눈을 감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이라는 가장 정직한 도구를 통해 누가 겸손했는지, 누가 오만했는지를 가려낼 뿐입니다. 스스로 재앙을 만든 자들에게 퇴로는 없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듯, 그들이 휘두른 칼날은 반드시 시간의 부메랑이 되어 그들 자신을 겨눌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이 폭풍의 시간을 건너가며 다시금 물어야 합니다. 나는 과연 겸손한가, 그리고 우리는 이 거대한 시간의 심판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가. 

 

하늘의 그물은 성긴 듯하나 결코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천망회회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작성 2026.05.04 05:51 수정 2026.05.0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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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