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의사로 오래 일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서두름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이다.
검사를 해도 당장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보호자는 불안하다. "왜 원인을 못 찾으세요?"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어떤 병은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하루 이틀 지켜본 뒤에야 처음 보이지 않던 신호가 떠오른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치료를 시작했다가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경우를 나는 여러 번 목격했다.
사람 사이의 일도 마찬가지다. 갈등이 생기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빨리 해결하려 한다. 감정이 뜨거운 상태에서 던진 말은 식고 나면 후회로 남는다. 하루만 두고 보면 자연스럽게 풀리는 갈등이 적지 않다.
영국 시인 존 키츠가 처음 사용한 말이 있다. '소극적 수용력Negative Capability.'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를 그대로 견뎌내는 힘이다.
빠른 결론이 언제나 최선은 아니다. 때로는 문제가 숙성될 시간을 기다리는 느린 사고방식이 더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해결책을 가져온다.
왜 우리는 모호함을 이토록 견디기 힘들까. 이유는 뇌의 작동 방식에 있다. 뇌는 불확실함을 위협 신호로 해석한다.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난다. 그 불편함에서 벗어나려고 서둘러 답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자연스럽다고 늘 옳은 건 아니다.
미국의 작가이자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는 『싱크 어게인』에서 우리가 너무 빨리 결론에 도달하려 한다고 지적한다. 의도적으로 문제를 방치했을 때 더 나은 결과가 나오는 사례를 들며, 종결 욕구를 내려놓을 것을 강조한다. 특히 조직의 리더일수록 모호한 상황을 견디는 능력이 탁월한 성과로 이어진다고.
철학자 알랭 드 보통도 인생의 많은 문제는 명쾌하게 해결되기보다는 우리가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문제와 공존하는 법을 익히는 것. 이것이 더 성숙한 태도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빨리 해결하려는 욕구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무능한 것 같고 문제가 더 악화될 것만 같다. 기다리는 것은 포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때론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 문제를 향한 우리의 성급함이 더 큰 문제를 만든다.
지금 당신의 삶에 아직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일이 있는가. 즉시 답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불확실한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 감정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 문제가 스스로 풀릴 시간을 주는 것이 때론 필요하다.
이는 무기력함이 아니다. 성숙한 힘, 소극적 수용력이다.
[박근필]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읽고 쓰고 말하는 삶으로 당신의 성장을 돕습니다
박근필성장연구소장, 수의사,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저서;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독저팅, 필북, 필레터, 필라이프 코칭 운영
부산 시청 특강 외 다수 출강
이메일 : tothemoon_par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