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의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무덥던 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바람이 선선해지고,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 길게 이어지던 추위도 어느 순간 물러가고, 발밑에서는 어김없이 봄기운이 올라온다. 계절은 그렇게 쉼 없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세월도 그와 다르지 않다. 내 사업을 제외하고 직장에서 보낸 시간이 50년에 이르렀다. 이제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일터에 서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문득 이곳에서 봄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하게 될지 생각해 본다.
이 아파트 단지에서 일한 지도 1년 3개월이 지났다. 소방안전관리와 시설물관리를 맡아 격일로 근무하며 하루를 보낸다.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많은 입주민을 만난다. 이제는 이곳이 낯선 직장이 아니라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하는 일은 크지 않다. 세대의 불편을 살피고, 단지 내 시설물을 점검하는 일이다. 사소한 작업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쌓여 주민들의 하루가 유지된다고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이곳에서 두 번의 설과 한 번의 추석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시설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이도 있고, 조용히 마음을 전하는 이도 있다. 그렇게 관계가 쌓여 갔다. 주민들이 건네는 작은 성의는 늘 고맙다. 커피나 음료, 때로는 식사 값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마음을 전해 준다. 과일이나 과자 같은 간식부터 세제와 비누 같은 생필품까지, 크고 작음을 떠나 정성이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페이퍼 타월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뜻밖이었지만, 막상 사용해 보니 더없이 실용적이었다. 상대를 생각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금년에 두 번째 받았다. 덕분에 주변에 나누며 소소한 기쁨을 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오래 남는 것은 배려다. 어느 날 임원께 전달할 서류가 있어 연락을 드렸을 때 상대는 내가 올라가는 대신 직접 내려오겠다고 했다. 그 임원께서는 늘 그랬다. 쉽게 잊히지 않는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사람 사이가 점점 멀어진다고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수고를 알아보고, 작은 마음을 나누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이 계절을 바꾸며 흐르듯, 나의 일상도 이곳에서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자리에서 봄을 맞이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는 일은 변함없을 것이다.
오늘도 단지를 돌며 시설을 살핀다. 맡은 일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충분한 의미를 찾고 있다. 다시 오는 봄을, 그저 담담하게 맞이하면서.
[문용대]
한국수필 수필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소설문학상 수상
지필문학 창립10주년기념 수필부문 대상 수상
코스미안뉴스, 브레이크뉴스 고정 필진
한국예인문학, 지필문학, 대한문학, 각종 문학카페 활동
대한문학 부회장, 지필문학 이사
수필집 ‘날개 작은 새도 높이 날 수 있다’, ‘영원을 향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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