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부터인가 금쪽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금쪽같이 귀한 자식이라는 의미로 써 오던 것이 이제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신적 문제점을 지닌 아이들을 비하하는 사회적 멸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숨어 있던 어른 금쪽이들이 곰팡이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어른 금쪽이’는 갑자기 등장한 기형이 아니라, 늘 있었던 존재였지만, 정보가 오픈된 현대 사회에서 유독 그 존재가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어른 금쪽이들은 책임의 거부하면서 권리는 누리고 싶은 비정상적인 존재로 사회에 뿌리박혀 있다. 그 원인은 단순하지 않다. 어린 시절 감정이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채 ‘성공’과 ‘성과’만 강조된 환경, 혹은 반대로 과잉 공감 속에서 좌절을 경험할 기회를 잃어버린 양육이 문제로 작용된 결과다. 거기에 비교와 평가가 일상화된 사회가 더해지며, 실패를 견디는 근육은 약해지고 인정 욕구는 비대해졌다.
각계각층에 어른 금쪽이들은 늘 존재한다. ‘정치금쪽이’, ‘재벌금쪽이’, ‘교수금쪽이’, ‘조폭금쪽이’, ‘공무원금쪽이’, ‘사회부적응금쪽이’, ‘막장금쪽이’ 등 사회 전반에 포진해 있다. 항공사의 땅콩회향 같은 갑질과 민폐로 피해를 입히고 때론 사회적 문제가 되어 기업의 존폐가 갈리는 경우도 있다. 조직에서는 책임 회피와 감정적 의사결정이 반복되어 신뢰의 비용이 증가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작은 갈등도 견디지 못해 단절이 잦아진다. 공적 영역에서는 규칙보다 감정이 앞서며, 사적 영역에서는 타인의 경계를 침범한다.
결국 공동체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어른 금쪽이들을 감당하게 되고, 건강한 다수는 보이지 않는 피해를 떠안는다. 가장 큰 손실은 효율이 아니라, 서로를 믿는 능력의 붕괴다. 해결의 방향은 처벌보다 ‘성숙의 재학습’에 두어야 한다. 감정을 ‘느끼는 것’과 ‘행동하는 것’을 분리해야 한다. 화가 나는 것은 자연적이지만, 그 화를 타인에게 쏟는 것은 선택이다. 자신의 감정에 책임지는 습관이 중요하다. 사소한 반복이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쌓는다. 신뢰는 한 번의 성과가 아니라, 누적된 일관성의 결과다.
어른 금쪽이들은 감정의 주권을 회복해야 한다. 불편을 즉시 제거하려 하지 말고, 감정을 끝까지 경험하고 언어화하는 훈련과 성찰을 통해 자기 행동을 기록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어른 금쪽이들에게 도덕과 책임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감정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이 져야 하며 타인에 대한 상처를 주는 행위가 곧 범법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혼자 사는 사회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어른 금쪽이’는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내재한 문제다. 드러난 금쪽이보다 드러나지 않은 금쪽이가 더 많기 때문이다.
어른 금쪽이는 나이만 어른이 되었을 뿐, 책임보다 상처를 먼저 꺼내 드는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스스로 돌아보는 성찰이 문제를 파악하는 핵심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나의 기준’이 생기면 흔들리더라도 다시 돌아올 자리가 생긴다.
“어른은 감정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사람이다.”
[전명희]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그만두고
‘밖철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몰두했지만
철학 없는 철학이 진정한 철학임을 깨달아
자유로운 떠돌이 여행자가 된 무소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