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퇴근길 식당 메뉴판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부담 없이 고르던 메뉴들이 이제는 한참을 고민하게 만드는 가격표를 달고 있다. 주유소 전광판의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것을 보면, 모처럼 마음먹었던 주말 나들이 계획도 슬그머니 접게 된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도 세상 물가는 나를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얇아진 지갑보다 더 가파르게 치솟는 ‘마음의 물가’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방어 기제를 세운다. 내가 먹고살기 빠듯하니 타인을 배려할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발이 조금만 밟혀도 날 선 말이 튀어나오고, 운전대만 잡으면 사소한 끼어들기에도 경적부터 울려댄다. 예전 같으면 웃으며 넘겼을 일들에 사사건건 예민해지는 스스로를 보며, 내 마음의 여유도 참 비싸졌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정서적 인플레이션’ 시대를 살고 있다. 살기 팍팍해질수록 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나 양보 한 번의 가치가 너무 귀해져서, 아무나 쉽게 쓰지 못하는 고가품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정작 지갑을 채우기 위해 뛰어다니느라 정서적 잔고가 바닥나고 있다는 사실은 잊은 채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돈 안 드는 사치’를 하나씩 찾아내기로 했다. 점심시간 식후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는 대신 회사 근처 작은 공원을 십 분간 걷는다거나, 퇴근 후 베란다 화초에게 물을 주며 멍하니 새순을 바라보는 일 같은 것들이다. 사실 대단한 건 아니다. 하지만 치솟는 물가 속에서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 이런 소소한 행동들은 의외로 큰 힘이 된다. 최소한 내 시간과 감정만큼은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작은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조금은 손해 보며 살기로 마음먹는다. 먼저 길을 양보하고,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며 건네는 가벼운 목례는 돈 한 푼 들지 않는 투자다. 하지만 그 짧은 교감이 주는 온기는 생각보다 오래간다. 내 마음의 물가가 높다고 해서 문을 꽉 걸어 잠그기보다는, 아주 조금만 문턱을 낮추는 것. 그것이 각박한 시대를 버티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생존 전략이다.
숫자로 찍히는 물가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 마음의 가치표만큼은 내가 직접 고쳐 쓸 수 있다. 오늘 하루, 당신의 마음 물가는 안녕한지 묻고 싶다. 혹시 세상의 속도에 맞춰 마음의 문턱을 너무 높게 설정해 두진 않았는가. 지갑은 비록 가벼워졌을지언정,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작은 배려만큼은 여전히 ‘착한 가격’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끔은 나 자신에게, 그리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 돈으로 살 수 없는 따뜻한 위로 한마디를 건네보자. 그것이 이 비싼 시대를 가장 풍요롭게 사는 방법이다.
[심선보]
칼럼니스트
머니파이 대표
금융투자 강사
월간 시사문단 신인상 시부문 작가 등단
저서:‘마음이 머물다 간 자리’, ‘초보를 위한 NPL 투자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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